소리를 빚는 사람들 - ② 인간문화재 악기장 김관식씨

대전 무형문화재 12호 악기장 김관식씨(53·대한민속국악사 대표))의 북 메우기 경력은 50년을 훌쩍 넘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어머니가 고장(鼓匠) 이었기에 태교로 북메우기를 배웠다는 의미다.

김씨는 “어렸을때 집이 낮에는 북만드는 공방, 밤에는 침실이었다”며 “악기장이 된것은 필연”이라고 어린시절을 회고했다.

김씨의 북만들기 가업은 할아버지 대무터 시작돼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 이어 아들(27)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김씨가 본격 악기장의 길로 들어선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터다. 아버지 밑에서 나무 고르기, 북 통만들기, 가죽 무두질, 단청 등 차근차근 기술을 습득해 갔다.

김씨는 “그때는 북 만들기가 생활 자체 였지 기술을 배운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욕심없이 북메우기에 메달린 결과 2002년 인간문화재까지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큰 북만들기 기록 경신(?)은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첫번째 기록은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등장했던 작품이다. 세번의 울림과 함께 성화가 타오르는 깜작쇼를 연출했던 그 북은 지름이 2m, 북통 길이가 2m30㎝다. 당시까진 가장 큰 북이었다. 하지만 그 기록은 김씨에 의해 계속 경신됐고 앞으로도 계속되고 있다.

두번째 작품은 청와대 춘추관에 설치된 신문고로 지름이 2m14㎝, 북통길이 2m50㎝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지름 2m40, 북통길이 2m70㎝로 또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김씨는 현재 지름 2m70㎝, 북통 길이 3m 크기의 북 제작에 도전을 하고 있다. 한우는 가죽 크기가 작아 물소가죽을 주문해 놓은 상태다. 북 만들기는 북통 재료인 나무고르기와 북통제작, 가죽 다루기, 북메우기, 단청및 북 장식 순으로 진행된다.

북통은 판자를 여러쪽 대어 만드는 쪽통과 통나무를 파서 쓰는 통 북으로 나뉜다. 나무는 큰북을 만들때는 소나무. 작은 북은 오동나무를 쓴다. 나무 쪽을 잇대어 둥글게 제작한다. 이때 목수에 버금가는 기능이 필요하다.

가죽은 북을 종류에 따라 소·개·노루 가죽을 쓴다. 주로 황소가죽을 쓴다. 암소나 송아지 가죽은 앏아서 쓰지 않는다. 가죽은 털을 제거한후 두께가 고르게 무두질을 하고 판자에 가장자리를 고정 시켜 말린다. 무두질을 잘 해야 경쾌하고 둔탁한 소리가 조화를 이뤄 좋은 북이 된다.

그리고 가죽을 통에 씌우는 메우기를 하고 단청및 장식하기로 북만들기의 막을 내린다.

김씨는 “북 만들기의 기능의 절정은 조율”이라고 강조한다. 완성된 북의 소리를 제대로 조율해야 명고(名鼓)가 된다. 악기장의 격도 조율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고장(鼓匠)을 ‘귀명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 만들기로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김씨지만 요즘 걱정이 많다. 저가 중국산이 물릴듯이 들어오면서 국내산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도 20명이었던 직원은 6명으로 줄였다. 중국산 ‘북소리’에 우리 국악기 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중국산 바람에 무괌심하다. 북만들기는 자신의 신앙이다. 그리고 민족의 악기, 민족의 소리를 지켜가야 하는 사명감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글=변상섭·사진=장길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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