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김현화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김현화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봄비가 내리고 새순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꽃눈이다. 산수유, 매화, 살구꽃, 벚꽃, 개나리까지, 올해도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서가 어김없다. 봄기운이 기지개를 켤수록 봄내음도 진해진다. 향긋한 풀 내음이 땅 위에 흩날리고 공기 중에는 꽃 향이 흘러난다. 봄은 흙과 돌 사이에도 새싹을 돋게 하고 사람들을 `볕`으로 이끈다. 자연 순리다.

봄꽃은 나무의 잎이 생기기 전에 가냘픈 가지를 채운다. 잎이 먼저 제자리를 잡은 이후 꽃이 필 것이라는 우리네 생각과 다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것은 밤낮의 길이 및 온도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햇볕에 영향을 받는 단일식물(가을꽃)은 긴밤, 장일식물(봄꽃)은 짧은 밤의 자극을 받았을 때 꽃눈이 형성된 후 개화한다고 한다. 봄꽃은 한해 전 여름부터 꽃눈을 만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잎이 있을 때 왕성한 광합성을 통해 꽃눈에 영양분을 투입하고 겨울이 오면 성장을 멈춘다. 그리고 따뜻한 기운이 감지되면 이내 꽃을 피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봄꽃은 겨울을 지내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꽃눈이 개화하기 위해서는 추운 겨울을 나뭇가지에서 버티는 환절기가 필요한 것이다.

산다는 건 `자신의 시간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산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잘 쓰는 것`일 게다. 사람에게는 날마다 동일한 시간을 모두 받는다.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오늘 주어진 시간을 저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데니스 웨이틀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무엇보다 매우 너그럽다"고 했다. 아무리 우리가 과거의 시간을 잘 쓰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신에게 적성이 맞고 흥미 있는 분야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를 위해 수개월 동안 종잣돈을 모으기도 하고 밤을 새워 매진한다. 몸은 피곤할 수 있지만 정신은 카타르시스다. 다만 자신의 적성, 흥미가 무엇인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자신의 생계와 연관된 직업이나 진로 선택으로 넘어가면 적성, 흥미는 순수한 나의 것인지, 아니면 부모, 가족의 뜻인지, 사회적 체면인지, 숨바꼭질마냥 난제가 된다. 그래서 혹자는 지금 자신의 `일(Job)`에 대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이기 싫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그것은 자신과 맞지 않는 직업, 진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은 무엇이든지 고달프다. 아무리 흥미 있는 분야도 입문 과정의 힘든 시기를 거치기 마련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슬기롭고 담담히 헤치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꽃이 만개할 수 있다, 삶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하는 이유다.

김현화 건양대병원 간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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