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 23일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  장면.  사진=한국표준연구소 제공
1976년 9월 23일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 장면. 사진=한국표준연구소 제공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특구)의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 오늘의 `과학기술 메카`라는 칭호는 유물처럼 취급받고 다른 특구와 혁신클러스터 등에 역할과 기능을 내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관심 부족에 대덕특구는 나홀로 고군분투 중이다. 내부에선 구성원들이 과거 성공이란 타성에 젖어 열정도 상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오는 2023년 출범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대덕특구에 찬사와 축하보단 `리노베이션(재창조)`과 `혁신`이 주문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메카=1973년 첫 삽을 뜬 대덕특구는 1978년 단지 건설이 본격화됐고 같은 해 한국표준연구소의 첫 입주를 시작으로 과학기술기관이 연이어 들어섰다. 1992년 기반시설 조성 등 연구개발 인프라가 구축됐고 이듬해 1993년 대전엑스포를 통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1997년 인력·연구비 감축 등 외환위기 폭풍에 잠시 주춤했지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과학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005년 특구법 시행에 따라 대덕연구단지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로 확대·개편됐다. 다각적인 지원이 이어졌고 실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2018년 말 기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2000여 개 기관이 대덕특구에 입주해 있다. 2005년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연구 개발비도 8조 3000억 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고 석·박사 등 전문인력은 3만 50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 특허 건수는 누적 13만 9000건에 달하고 해외 특허도 7만 건을 돌파했다. 이밖에 코스닥 등록기업 48개, 연구소기업 295개·기술기업 122개(2019년 기준) 등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과학기술 자원을 갖추고 있다.

◇특구 전성시대로 침체기 걷는 대덕=대덕특구의 지위가 위협받는다. 전국 곳곳에 특구가 등장하면서다. 국가 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과학기술 메카`란 대덕특구의 상징성이 퇴색될 수밖에 없게 한다. 2011년 광주와 대구, 2012년 부산, 2015년 전북에 각각 연구개발특구가 추가 지정됐고 지난해 8월 안산 등 6곳이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선정됐다. 또 지난달 구미 등 6곳이 강소특구로 신규 지정됐다. 이들 특구는 대덕특구와 마찬가지로 혁신 성장을 통한 경제·사회 발전이란 비전을 공유한다. 지역·유형별 목표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덕특구의 영향력·역할 축소 현상을 부추기는 직간접적 요소인 셈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연구개발 결과의 상업화 미흡, 선도 기업 부재, 입주 기관 간 교류 부족, 인접 산업단지와의 연계 부족 등이 대덕특구의 침체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매출액을 보면 대덕특구는 광주·대구특구 출범 해인 2011년부터 오랜 기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5년 2조 5000억 원으로 시작해 2011년 16조 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7년까지 16조 원대에서 신장·역신장을 반복하며 보합세를 보였다. 2018년 18조 원을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서 벗어난 듯했지만, 출범 10여 년에 불과한 경기도 혁신 클러스터 판교테크노밸리가 같은 해 매출 87조 원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선배들처럼 땀과 열정으로 재도약에 매진해야=전문가들은 대덕특구가 과거 성공의 늪에 빠져 혁신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충고한다. 대전 출신으로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을 역임했던 양성광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은 현 상황을 과도기가 도래한 탓이라고 진단한다. 양 이사장은 "대덕연구단지 시절인 2000년대 초까진 국가적 미션을 받아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냈다"면서도 "도시도 오래되면 쇠퇴하듯 대덕특구는 현재 과도기다. 50년 가까이 됐기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바꿔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신인 박찬구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 회장은 위기 의식 결여와 철학의 부재를 이유로 들고 있다. 박 회장은 "조직 자체가 혁신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벤처기업 같이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없다"고 꼬집었다. 박 회장은 KAIST 인공위성센터에서 `우리별2호`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과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과 소명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식은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한다. 과거 선배 연구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적 사명감을 바탕으로 땀과 열정을 쏟아 대덕특구를 다시 뛰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역량은 충분…집중 투자·관심 절실=대덕특구는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다. 국가적인 과학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 운영 방향을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로 탈바꿈하려 한다. 계획은 공간 활성화와 혁신 생태계 조성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대덕특구 미래 50년을 준비한다는 포부다. 기본구상은 나왔고 올해 세부계획이 발표된다. 대전시와 함께 계획을 수립 중인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양성광 이사장은 대덕특구 리노베이션을 위해 국가의 적극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양 이사장은 "대덕특구는 인력·공간·기술 등 4차산업혁명을 이끌 요건을 갖추고 있다"며 "새로운 산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4차산업혁명특별시`로서의 기반을 대덕특구가 갖추고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차세대 먹거리로 바이오헬스와 ICT 융복합 산업을 들었다. 그는 "바이오헬스 관련 기술기업이 지역에 많은 편이다. 인근 오송바이오폴리스지구를 비롯한 지역 대학병원들과 협력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I·5G·빅데이터 등 ICT 융복합 산업은 반드시 해야 할 분야"라며 "대전에 관련 선도기업이 없는 게 아쉽다. 삼성 등 대기업 유치를 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장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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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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