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칼럼을 부탁받은 후 난 누구이고, 왜 간호사를 하게 되었으며,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많은 직업 중 왜 간호사를 선택했는지 자연스레 연결고리를 찾아보게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충수염으로 수술해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에 병문안을 온 경험이 있다. 방문객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끝에서 알코올 냄새가 짙게 나고 있었고 흰색 유니폼과 캡을 쓴 간호사를 보게 되었다. 정말 하얀색이었다. 평소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한 냄새와 옷차림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장소와 인물이었다. 그 날은 추후 장래희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인상적인 날이다. 그 이후 책 속에서 간호사와 의사가 나오면 그때의 기억이 절로 떠올랐을 정도니 말이다.

1995년 나는 내 기억 속의 그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신규 간호사가 됐다. 임상에서 경험했던 환경은 고되었고 하루하루 새로웠다. 소아청소년과는 심장학, 신장학, 위장관학, 혈액·종양학, 신경학, 내분비학 등 내과학에서 취급하는 거의 모든 세부분과가 소아를 대상으로 포함돼 있으며, 이외에 유전학, 예방접종, 성인병의 예방 등의 지식을 갖춰야 하는 진료과다.

간호사의 경우 의사처럼 전공 분야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에 아주 방대하게 알아야 하고, 환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주기 위해 근무시간 내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육체적인 고단함도 기억난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근무시간 내내 긴장했으며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업무가 하나하나 떠올라 꿈속에서도 다시 근무모드가 됐다. 지금도 밤 9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로고송이 나오면 거실에 모여 있는 가족과 이별하듯이 인사하고 밤 근무를 위해 출근했던 우울감도 기억난다.

간호사의 감정노동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한다. 설명력은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능력이다. 당장 불안해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 질환별 공부를 하며 힘든 신규간호사 기간을 잘 보낸 것 같다.

또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을 기르기 위해 퇴근 후 예능 프로그램을 보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멍하니 있었다. 또 친구를 만나 일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기억들을 다른 기억들로 채워 넣고, 여행을 했다. 이러한 노력들로 25년의 장기간 근무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주변에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큰 도움은 두 아이의 엄마인 나에게 "엄마는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후회가 많았다. 내 딸은 직장생활을 하는 딸이 됐으면 좋겠다. 힘들 때 내가 도와주마. 그만두지 말라"고 하시며 옆에서 희생하신 어머니가 있었다. 간호사로 살면서 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위해 크레파스를 선물해주고, 먹고 싶은 음식을 건네주고, 회복을 기원하는 카드를 써주는 등 내 직업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던 롤모델들, 목소리까지 닮아가고 싶었던 선배들이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항상 내 옆에서 `너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위로를 주는 동기들이 떠오른다.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의 우울했고 고된 어려움들로 인해 살면서 닥치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조금 더 유연하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고 있다. 간호사는 다양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오늘도 새로운 상황을 겪는 이 일이 좋다.

`행복을 위한 첫걸음, 1년의 하루는 나를 위한 시간입니다`를 외치며 오늘도 종합건강증진센터로 출근한다. 모든 분들이 정기 검진으로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면서 말이다.

길소영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종합건강증진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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