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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칼럼] 삶·죽음 매일 성찰

2019-11-12기사 편집 2019-11-12 16: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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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스피스 이야기

첨부사진1조은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파트장.
2005년 7월 호스피스병동 첫 출근은 무거운 마음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시작했다. 호스피스병동은 20대인 나에겐 두려운 곳이어서 기대와 설렘보다는 걱정으로 출근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병실 문을 여는 순간 무척 놀랐다. 걱정과 달리 병실 안에 있던 말기암 환자와 보호자의 표정은 밝았다.

고통의 신음보다 웃음소리가 컸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환자와 가족들은 따뜻한 미소와 마음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일반 사람들은 죽으러 가는 곳으로 생각해 피하고 싶은 호스피스 병동. 하지만 10년 넘게 호스피스 간호사로 근무한 나는 이 병동이 품위 있는 삶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말기 암을 진단받고 더 이상의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못하면 암은 점점 커지고 여러 증상들이 환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극심한 통증, 구토, 식욕부진. 말기 암 환자들은 조절되지 않는 증상으로 힘들게 살아간다.

말기 암 환자를 고통스럽지 않게 하루를 살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큰아들의 결혼식을 2주 앞둔 50대 중반의 위암 여자 환자와 남편이다.

환자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빨리 죽고 싶다고 애원했고, 남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스피스병동을 찾았다.

병동에서는 적극적인 통증 조절과 심리 상담을 했다. 2주가 지난 뒤 환자는 그토록 원했던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해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병동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제는 죽고 싶은 생각보다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고 가족 곁에서 고통없이 지내다 편안하게 임종했다.

무연고로 대전역에서 노숙을 하며 지냈던 직장암 말기 남자 환자도 있었다. 하반신 마비와 복부 통증으로 병원 응급실로 왔고 응급처치 후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졌다.

환자는 연락이 끊긴 누나를 찾았고 고향을 그리워했다. 병원은 환자의 최근 주거지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수소문해 3일 만에 누나를 찾았다.

누나를 찾았다는 소리에 환자는 벅찬 가슴으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다음날 환자는 20년 만에 누나와 만났다. 환자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누나의 손을 잡은 채 편안하게 임종했다.

호스피스병동은 매일, 매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의학적 치료와 간호뿐 아니라 환자가 인간답고 고통스럽지 않으며 품위 있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곳이다.

환자가 가족과 함께 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난 생각한다.

나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과 죽음을 매일 성찰하게 된다.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할 수 있어 감사하다.

조은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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