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⑤ 소제 철도관사촌

대동천좌안5길 25 대문
대동천좌안5길 25 대문
대전역 동광장(대전 동구 소제동 )에 내려 조금만 걷다보면, 홀로 시간이 우뚝 멈춰선 마을이 나온다. 도심 속 보물처럼 숨겨진 `슬로우 시티`,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대동천을 끼고 중첩된 집들은 도란도란한 마을풍경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오브제다. 시울길, 솔랑시울길, 새둑길, 수향길, 철갑길… 비좁은 골목들은 저마다 예쁜 이름도 갖고있다. 알록달록한 대문을 길동무 삼아 폭이 1m가 채 되지 않는 골목을 걷다 보면, 집집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석류나무가 눈에 띈다. 전국 최고의 슬로우시티 소제동. 아이부터 어른까지 골목 곳곳을 거닐며 추억을 되새기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곳이다.

△세월 차곡차곡 쌓인 마을박물관= "그라운드 볼 알어? 대전에 운동장 있었는데 모르지? 대전시내에 철도운동장이라고 있었어. 거기서 야구를 했어. 여기 근처야. 아파트 자리. 그때 일반사람들하고 미국사람들하고 경기도 하고 그랬지. 울타리, 펜스 같은 거…각목으로 쳐놔서 못 보게 해놓고 입장료 받았어(이상기·72·계룡문고 운영)"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잘 남아 있는 철도관사촌 유적이다. 소제동에는 1960년대 한 집을 두개 구획으로 나누어 살았던 `한지붕 두가족` 주택부터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야구경기를 했던 추억이 깃든 `철도 운동장`, 골목길, 나무, 하다 못해 대문까지도 그때 그곳에 멈춰있다. 한 마을에 목조부터 시멘트, 콘크리트까지 10년도 채 안되는 시기에 다양한 재질로 건물을 지어 건축 역사가 한눈에 담긴다. 좁은 골목의 간격에는 이웃과의 친밀감과 배려의 미학이 숨어 있다. 80여 년 가까이 주인도 수차례 바뀌고, 창문도 바뀌고 대문도 새로 만들어졌지만 기본적인 마을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 요즘의 획일적인 아파트와는 달리 집집마다 개성있는 대문과 수목이 늘어선 `마을박물관`이다.

이상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의 마을박물관은 1970-80년대 건물을 남겨놓고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소재동은 1960년대부터의 거주양식이 정말 잘 남아있다"며 "하나하나의 조그마한 모티브들이 하나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그런 느낌이다. 획일화된 건물들 속에서 그런 걸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역사 증명하는 끈=소제동의 모습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건, 통감부 시절이었던 1907년 이곳에 일본 신사인 `태신궁`이 세워지면서 부터다. 태신궁은 일본어로 `다이진구`라고 읽는데, 원래 신사는 일본인들이 특정 신위를 모셔놓고 복을 비는 소박한 민간신앙의 공간이었다. 소제동에 신사가 들어선 것은 여러모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사란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깨끗하고 신성한 느낌을 자아내는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소제호와 소제호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솔랑산이 있는 소제동은 안성맞춤의 자리였을 것이다.

소제동은 대전지역에도 소중한 의미가 있다. 1980년대 대전은 직할시로 바뀌면서 기존의 원도심에서 회덕, 유성, 진잠, 산내 흡수하면서 광역화 됐다. 이 전까지는 대전지역의 역사를 근대 이전의 시기와 함께 묶어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이 바로 소제동이었다. 송시열 선생의 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로우(Slow) 앤 스테디(Steady) 마을로 남아야="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옛날얘기를 하다 보면 문득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고있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눈에 안보이면 시큰둥하거든요. 소제동은 나무 전봇대나 그때 그시절 골목이 남아있으니 `그때 이런게 있었구나` 하죠."

개발과 재생에 관한 시선과 욕망이 혼재된 곳 소제동. 사람의 마음처럼 한 마을도 바꾸기는 쉬워도, 이미 변해버린 것을 되돌리기란 어렵다. 세월의 먼지를 입고 자리를 지키던 소제동 관사촌이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며 헐릴 운명에 처했다. 그나마 목숨을 유지한 일부 관사촌은 민간자본이 자리잡아 `힙한` 카페들이 속속 자리잡았다. 소제동에 빠르게 침투한 민간 자본들은 오래된 관사를 부재를 당장은 멀끔하지만 값싼 부재로 바꾸어 놓았다. 이 교수는 시간이 지나 상업의 물결이 빠져나갔을 때 도태될 건물과 공간에 대해 우려했다. 이 교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충분히 자리한 다음 상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역에 대한 소중함은 2010년도 초반부터 같이 고민하고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나 자료를 충분히 아카이빙 해 놓고도 대응을 못했다는 것에 대해 연구자들과 관이 함께 반성해야 한다"며 "건물에 대한 가치나 마을의 역사를 고민 없이 가격이 오를대로 오르고 바뀔대로 바뀌어버린 이 공간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러한 현상들이 걱정되는 것은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공간이나 건축물들에 대한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리모델링"이라며 "상업자본들은 수익이 어느정도 나고 정체되면 바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지속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소제동은 아이들과 교육차 왔다가 밥을 먹고 차도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야 한다"며 "자칫 잘못될 수 있는 소제동의 개발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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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길 22 대문
철갑길 22 대문
수향길 19 대문
수향길 19 대문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내부가 비교적 잘 보존 돼 있는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내부가 비교적 잘 보존 돼 있는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대전 전통나래관에서 내려다본 소제동 철도관사촌 전경. 사진=조수연 기자
대전 전통나래관에서 내려다본 소제동 철도관사촌 전경. 사진=조수연 기자
소제동 한 주택 마당의 나무전봇대. 사진=조수연 기자
소제동 한 주택 마당의 나무전봇대. 사진=조수연 기자
내부가 비교적 잘 보존 돼 있는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내부가 비교적 잘 보존 돼 있는 소제동의 한 주택. 사진=조수연 기자
집 주인의 이름을 붙여놓는 패가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조수연 기자
집 주인의 이름을 붙여놓는 패가 그대로 남아있다. 사진=조수연 기자

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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