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④ 테미오래

충남도지사 공관 내부 툇마루. 사진=빈운용 기자
충남도지사 공관 내부 툇마루. 사진=빈운용 기자
옛스러운 정취가 묻어나는 대전시 중구 대흥동길을 걷다 보면 경사진 골목길(대흥동 326-67번지 일원)이 나온다. 언덕을 오르면 충남도지사 공관을 비롯해 총 6채의 관사가 펼쳐진다. 그 옆으로는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훤칠한 키의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멋스럽다. 지난 4월 6일 개관한 옛 관사촌 `테미오래`다. 그 이름을 입안에서 몇 번 굴려보니 어감마저 예쁘다. 과거에는 관사촌으로 불렸으며, 2018년 공모를 통해 지금의 명칭을 얻었다. 테를 둘러쌓은 작은 산성 `테미`와 한 동네 몇 집이 한 골목으로, 또는 한 이웃으로 돼있는 구역이란 뜻의 순 우리말 `오래`를 합성한 말과 `테미로 오라`는 뜻으로 해석돼 재미있고 친근한 느낌을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도지사공관을 필두로 관사 1, 2, 5, 6호가 1기 전시로 꾸며져 있다. 관사 7-10호는 지역과 해외작가 레지던스와 청년 공유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축의 형태와 대전의 근현대사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곳을 이상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와 함께 돌아봤다.

△위민행정 고민한 공간= 충남도지사공관은 1932년도에 건립된 이후 2012년도 안희정 지사가 마지막으로 사용 할 때까지 줄곧 도지사 관사로 사용됐다. 조선시대 도백(道伯) 혹은 관찰사(觀察使)라 불렀던 도지사는 임금이 각 도에 파견하는 지방행정의 최고 책임자였다. 지역의 징세권, 경찰권, 재판권, 입법권 같은 행정상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종 2품 벼슬이기도 했다. 직위별로 각 건물의 평수에 차이가 났는데, 도지사공관 건물 면적만 100평 정도다. 정원까지 딸렸으니 그 규모에서부터 당시 도지사의 권위를 느낄 수 있다. 도지사공관과 1, 2호 관사의 경우 두 개의 현관으로 나뉘어 진입하는 내부 공간이 중복도를 가운데 두고 서쪽에는 접객공간, 동쪽에는 가족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퇴근 후에도 언제든지 손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됐음을 엿볼 수 있다. 1층 구석에는 도지사는 퇴근 후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다보며 휴식을 취하고 위민행정을 위한 고뇌도 했을 것이다. 당시 도지사가 임명하는 주임급 간사인 국장급 관사는 20평대 초반부터 60평대 사이로 나뉘었다. 왼쪽의 2, 3, 4, 6호 관사는 40평대, 오른쪽에 있는 관사는 33평 정도 규모다.

△다수 에피소드 담은 역사적 장소=테미오래의 긴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묻어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청와대의 전 이름인 대전의 `경무대(景武臺)`라 불렀다. 도지사공관이 6.25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거처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은 비밀리에 대전방송 관계자를 불러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시키십시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라는 내용의 6·27 특별방송을 내보냈다. 회고록에는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처럼 이곳에 머물며 고뇌했던 날들이 담겨있다. 또한 UN군 참전을 공식 요청하고 주한미군 지위에 관한 불평등 조약(대전협정)을 조인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신여성의 대표로 여류작가이자 화가였던 나혜석과 관련된 공간으로 나혜석이 1920년대 일본 교토제국대학 출신인 염상섭의 친구 김우영과 결혼을 했으며 결혼생활 중 유럽에서 최린과 사랑에 빠지시게 되면서 김우영과는 이혼한다. 그 후에 전 남편이였던 김우영이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충청남도 산업부에 부장으로 1940년 발령을 받아서 대전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 김우영씨가 거처로 살던 곳이 바로 도지사 관사촌이다. 당시 둘 사이에 자녀 3명을 김우영이 키우며 이곳에 머물렀고 나혜석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그 아이들이 모정으로 찾아왔던 곳이 바로 옛 충청남도관사촌이라 전해진다.

△세련된 건축양식= 근대와 현대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실내와 노송이 굽이굽이 뻗은 정원이 아름다운 도심 속 쉼터다. 외관이 아름다운 만큼 건물 내외부에서 세련된 일제강점기 조성된 관사 중 광복 이후에 행정관료의 관사로 70여 년간 동일 지역에 동일한 공간을 생활공간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된 사례는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어렵고, 보존 상태 또한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현관홀은 아르데코 풍의 원형창과 유리장식 등으로 꾸몄다. 현재 아파트의 `베란다` 기능을 하는 툇마루에 고즈넉한 빛이 들어온다. 당시 유행했던 건축양식을 일본식 건축과 절충해서 지었다. 건물의 외벽은 붉은색 벽돌과 기와로 마감했으며, 대지를 따라 낮고 길게 늘어선 건물 배치 얕은 경사의 지붕, 단순한 장식 등은 마치 미국 근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로비하우스를 연상시킨다. 건물의 형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수평과 수직성을 강조했으며, 창문은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적 요소와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형태로 마감했다. 당시에 유행했던 서양식 건축 양식과 예술사조를 도지사공관 및 임원관사에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당대에 보기드물게 주거건축 사례이기도 하다.

△`보존`과 `활용`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흩날리는 낙엽조차 그림 같은 도심 속 쉼터로 거듭난 테미오래. 도지사공관과 관사촌이 하나의 군락을 이루며 잘 보존돼 있는 사례는 전국에서 유일한 예다. 현재는 도지사공관과 9동의 관사가 남아있는데, 도지사공관은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49호로, 1, 2, 5, 6호 관사는 등록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돼 있으며, 이외에 3호 관사와 7, 8, 9, 10호 관사가 함께 보존돼 있다. 대전시가 총사업비 120억을 투입해 야심차게 뛰어든 사업인 만큼, 현명한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상희 목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충남도 관사촌은 대전 원도심에서 도시의 역사, 문화 그리고 건축적 맥락을 일궈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며 "대전 시민들의 문화적인 삶을 증진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충남도지사 관사촌 경우에는 특히 보존과 활용이라는 두 가지 원칙과 목적을 동시에 수반해야 한다"며 "대전시는 우선적으로 도시개발에 관련된 가이드 라인이나 문화재에 대한 보존 관리지침들이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테미오래 관람시간은 3-11월까지는 10시-오후 6시다. 12-2월까지는 10시-오후 2시까지 단축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당일은 휴관한다.조수연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테미오래 5호 관사. 사진=빈운용 기자
테미오래 5호 관사. 사진=빈운용 기자
1980년대 신문에 나온 충남도지사관사.
1980년대 신문에 나온 충남도지사관사.
충남도지사 관사. 사진=빈운용 기자
충남도지사 관사. 사진=빈운용 기자

조수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