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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소사이어티]"절망의 순간 받은 10만원 거름돼 희망 싹 움텄죠"

2019-07-24기사 편집 2019-07-24 14:23:35      박대항 기자 pdh4112@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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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지역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연 수입 10-15% 이웃사랑 실천

첨부사진1신정용, 김동복 부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앞날을 볼 수 없다 한들 내가 일궈 놓은 사업이 이렇게 쉽게 내리막을 걷게 될 줄은 생각한적 없었다. 가까스로 모은 자금으로 제품을 생산했지만 공장운영비와 직원들 월급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다시 공장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생산라인을 지켰고 아내는 회사 전체의 식사를 챙겼다."

자그마한 마을 청양에서 연 매출 90여 억 원짜리 비료회사 신기산업을 창업한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신정용, 김동복씨 부부. '아너소사이어티'에 1억 원씩 기부한 이들이 끼닛거리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부모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매불망 창 밖만 바라보는 딸아이와 아들이 있으니 1분 1초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허리띠가 더욱 두텁게 감기던 시절, 숨이 찼지만 계속 뛰었다.

두 겨울의 매서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럴 때 김치라도 맘껏 담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만만치 않았다. 수확이 끝난 얼어붙은 배추밭을 찾았다가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 배추밭이었기 때문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망한 퇴비공장 운영자였던 그다.

"흰 눈이 온 산을 덮었지만 몸과 마음은 꺼멓게 타 들어갔죠.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어요."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예산 장에 종종 들렀다. 장이 파할 때 쯤이면 어물전에는 팔고 남은 생선머리 같은 것 들이 버려져 있었다. 상인들에게는 집에 있는 강아지를 먹인다는 구실을 댔다.

"아빠, 우리집에 강아지가 없잖아. 나 모르는데 숨겨 놓은 거야?" 그 때 함께 온 딸아이의 순진무구한 말이 아직도 귓가를 울릴 때가 있다.

신 씨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났다. 그 화는 딸아이를 향했다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사업이 아닌 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얼어붙은 땅에 강아지 나무를 심었어요. 매일 밤 자기 전 찾아가 바라보며 나를 돌아봤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기도 했어요.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얼어붙은 배추밭과 강아지 나무가 있습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죠."

20여년 전 공장이 부도났다. 모두가 어렵던 그 시절이다. 갚아야 할 빚이 37억 원이나 됐다. 당시 아내 김씨는 예산군청 공무원이었으나 검은 양복 입은 장정들이 일터인 군청으로 찾아와 "빌린 돈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월급도 압류했다. 17년 일해온 군청을 떠나 남편 일을 돕기로 했다.

공장이 경매에 넘어가고 퇴비원료 살돈이 없어 쩔쩔매야 했다. 절망의 순간, 오래 전 뿌린 이웃사랑의 씨앗이 희망으로 싹텄다.

부부가 비료공장을 하면서 장애인을 고용하고 사비를 들여 결혼식까지 시켜준 일들을 기억하며 지역 장애인 단체 직원이 선뜻 빚 보증을 서줬다. 예산군청 옛 동료도 그들을 믿어줬다. 이때 받아든 10만 원으로 원료를 살 수 있었다. 가장 절실하던 순간 단비가 내린 셈이다.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하루 일을 시작했다. 신씨는 24시간이 짧다고 생산라인을 지켰고 김씨는 직원들 밥을 챙기며 경리 일을 했다. 7년 가까이 앞만 보며 달린 2012년 12월 31일, 마침내 국세 5억 원을 마지막으로 모든 빛을 털어낼 수 있었다.

지금도 부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 반이면 출근한다. 그렇게 번 돈 10-15%를 매년 소문 안 내고 어려운 곳에 기부한다. 이웃사랑의 노래는 메아리로 다시 퍼져나가고 있다.

"10여 년전 저희 아기가 희소병에 걸렸을 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이 '신기산업'이라고 적힌 100만 원이 든 돈을 주고 갔다, 가족동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던 때였는데…. 이 돈을 갚으려고 지인이 차려준 주꾸미집에서 열심히 일했다. 애도 살고, 장사도 살았다."

충남 아산에서 대형식당을 하는 임경순씨(50)대표의 말이다. 그도 이제 1억 원을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의 멤버다. 임씨와 신씨 부부는 고액기부자 모임 때면 그 시절을 그리며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신정용씨


◇신정용·김동복 부부 그들은 누구인가?

31년 동안 '흙'을 만들며 살아온 삶.

신기산업회장 신정용씨(63)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청양에서 공주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양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청양 지킴이'다.

그는 지난 2016년 회갑을 즈음해 1억 원을 기부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은 이웃 사랑의 결실이자 인생 2모작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에게 쓰라렸던 과거의 기억을 달래주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기도 하다.

실패는 언제든지 딛고 일어설 수 있지만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사방이 막힌 벽과 같다는 신 씨는 어두운 터널과도 같던 좌절의 시절, 고난의 길을 함께해 온 그의 아내 김동복씨(58)와 2자녀가 더 없는 힘이고 용기라고 말한다.

부인 김 씨는 20여 년전 신기산업창업자인 남편의 공장이 부도가 나 37억 원의 빚을 지면서 자신의 월급마저 압류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견디기 어려운 빚 독촉에 17년 일해 온 공직을 떠나 남편의 곁으로 달려와 직원들의 밥을 챙겨주며 경리로 억척생활을 꾸려나갔다. 김 씨는 변할 수 없는 찰떡부부로 이젠 옹골찬 여성 경제인으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세종충남지회 회장이다.

김 회장은 남편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에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 역시 올해 남편과 함께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 부부아너소사이어티 회원가 됐다. 이들 부부는 늘 부지런한 마음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 일하고 신념을 지켜 나가면 언젠가 나의 길 앞엔 희망과 기쁨의 평온한 길이 보일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서로가 없으면 날 수 없는 비익조처럼 살아온 이들 부부가 봉사의 날갯짓이 얼마나 높이, 오랫동안 펼쳐질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박대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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