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 갈 거면 아프다고 하지 마!" 울부짖는 목소리에 놀라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아버지를 향한 딸의 목소리다. 딸은 감정조절이 어려운지 눈을 감고 있는 환자 곁을 뜬다. 아프고 싶고 병원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환자는 말기신장질환보다 혈액암을 먼저 얻었다. 혈액암 치료는 서울로 다니는 병원에서, 혈액투석은 우리 병원에서 받았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 그리고 적은 말수의 환자는 투석시간 대부분을 잠을 청하는 데 썼다. 혈액투석을 마치 고단한 몸을 쉬게 하고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듯했다.

환자는 초기에 직장생활과 치료를 병행하기 위해 일과시간에서 치료할 시간을 빼서 병원에 왔다. 쉽게 피로해지는 두 가지 만성질환과 직장을 모두 안고 가기에 직장은 더 이상 힘이 되지 못했던 걸까. 2년 정도 흐르자 하던 일을 그만뒀다.

최근 급격히 몸 상태가 나빠진 환자가 혼자 병원 다니는 것이 필자는 내심 불안했다. 여러 날 지속되는 열과 발걸음을 옮기는 데 평소보다 시간이 걸리는 움직임은 안전사고를 염려하게 했다. 외출 시 보호자 동반의 필요성과 혈액암 치료를 위한 입원이 필요한 상태임을 여러 번 얘기했다. 하지만 환자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다니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혈액투석이나 수혈 등의 치료를 거부하지는 않으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부분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결국 환자의 보호자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일 때문에 낮에 병원 올 시간이 못 되는 엄마를 대신해 고등학생 딸이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는 딸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고, 딸은 아버지가 이렇게 힘든 상황인 줄 몰랐다며 놀랐다. 집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 심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에게 어려운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을 가장(家長)의 모습이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환자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식을 보자 그 날로 고집을 거두고 혈액암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갔다.

환자와 그의 딸을 보니 오래전 겪었던 기억이 오버랩 돼 떠오른다. 필자가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다름 아닌 보호자 신분이었다. `아빠 모시고 병원 다녀오라`는 엄마의 결정에 따라 인근 큰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갔다.

성처럼 보이는 대학병원에 호기심을 안고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후각을 지배했다. 낯선 공기에 몸은 저절로 긴장과 경계로 굳었다. 아빠를 따라 미로 같은 길을 지나 안과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빠의 눈 통증과 점점 저하되는 시력은 향후 실명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검사와 진료를 받는 아빠 옆에서 얼굴을 덮는 조용한 눈물이 흐느낌이 되어 어깨까지 다 흔들렸다. 아빠는 그간 혼자 통증을 참고 어두운 시야를 드러내지 못한 채 지냈던 것이다.

엄마가 맏이인 필자를 대동시켜 병원을 보낸 이유를 그제야 알아챘다. 집에서 아빠의 행동을 이상하게 보기만 한 미안한 마음과 앞으로 아빠가 시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무서움에 겁이 났다. 당시 안과에 있던 간호사는 필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다독이며 연신 위로의 말로 달래주었다. `자식을 길러 봐야 부모 사랑을 안다`는 속담처럼 필자가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 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인다. 부모, 그중에서도 가장이 지닌 드넓고 깊은 마음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세상의 모든 가장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선미 을지대학교병원 간호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