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소사이어티 민경랑 신흥초 교장. 사진=빈운용 기자
아너소사이어티 민경랑 신흥초 교장. 사진=빈운용 기자
민경랑(61) 대전 신흥초 교장에게 기부란 몸에 밴 일상 속 습관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에게 뻗는 도움의 손길부터 기부프로그램 참여까지 지금껏 크고 작은 기부활동을 통해 나눔의 삶을 살아온 그다.

평생 크고 작은 기부활동에 매진해온 그였지만 기부의 첫 걸음은 그저 제자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서였다.

"1979년에 첫 교사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충남 태안군 소재 이원초등학교였는데 이때부터 매년 종업식 날마다 반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 아이 한 명에게 옷을 한 벌씩 선물해줬어요. 당시만 해도 `기부`라는 거창한 명목보다는 단순히 측은지심에서 시작된 행동이었어요."

민 교장은 교직에 몸담으며 항상 제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 학업의지는 있지만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줬고, 집안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사비를 털어 분기마다 장학금을 줬다. 다른 학교로 부임하고 난 뒤에도 지원해주던 학생의 은행계좌로 매달 5만 원씩 입금해줄 정도로 그의 제자사랑은 남달랐다.

민 교장은 그의 품에서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이 돼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행복하다고 한다.

"제자들이 사회에 진출해 취직한 뒤 첫 월급을 탔다고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잘 커줬다는 생각에 오히려 제가 고마운 마음이 들고는 합니다."

민 교장이 나눔의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늘 이웃에게 베풀었던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1960년대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궁핍한 삶을 살던 시기였다. 민 교장의 집안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늘 주변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그때는 형편이 안 좋은 이웃들이 끼니때가 되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마다하지 않고 항상 밥상을 차려줬다. 거지들이 찾아와 구걸해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그냥 보내는 법 없이 쌀이나 보리를 내어줬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베푸는 삶이 자연스럽게 체득됐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민 교장은 어릴 적부터 정이 많았다.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늘 짐을 집까지 옮겨 드렸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앞장서서 도움을 줬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병약했던 몸도 민 교장의 기부 철학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민 교장은 13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2달 동안 학교도 못 나가고 병석에 누워있었다. 당시 그는 병이 다 나으면 통장에 저금해뒀던 돈을 찾아 좋은 일에 쓰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민 교장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교사로 발령받고 나서도 건강이 안 좋아 수술을 받을 때마다 `왜 나만 아플까`라는 생각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며 "그때마다 건강을 되찾으면 더욱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민 교장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부행보에 나섰다. 당시 우연히 민간구호단체 월드비전의 홍보영상을 보게 된 그는 직접 월드비전 사무실을 찾아가서 한국인 1명과 외국인 2명에게 매달 일정금액씩 기부를 시작했다. 홍보영상을 보고 전화로 기부신청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사무실에 직접 찾아오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민 교장의 관심과 열정에 월드비전 직원들도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월드비전을 시작으로 기부행보에 박차를 가한 민 교장은 2016년 12월 아너소사이어티 49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평생 기부에 매진해온 민 교장의 기부철학은 그의 교육철학과도 궤를 같이 한다. 민 교장이 교편에서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점은 `나눔과 배려`다.

때문에 그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신흥초등학교 학생들은 늘 기부에 관심이 많다. 전교 어린이회의에서 장애인을 도와주기 위한 모금 활동 등을 안건으로 상정해 토론하고, 전교회장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부문화 확산에 노력하고 있다.

신흥초 교사들과 학부모들도 그의 기부행보에 동참하고 있다.

민 교장은 2017년에 `대전 신흥초등학교 제자사랑 장학회`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신흥초 교사들이 매달 1만 원씩 기부해서 모인 돈으로 각 학급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모임이다. 첫 해 25명이었던 회원이 현재 43명으로 늘었을 정도로 신흥초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 `신흥 가족봉사단`을 만들어서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통해 가족의 화합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학교와 학부모 간 신뢰도 쌓여서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민 교장은 은퇴 후 봉사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평생 기부를 해왔지만 병약한 탓에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늘 아쉬워하던 그였다.

민 교장은 은퇴 후 캄보디아 등 빈곤국에 가서 학교를 세울 계획을 구상 중이다. 아직은 막연한 계획이지만 체력부터 길러야겠다는 생각으로 현재 헬스장을 다니며 꾸준히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껏 마음먹었던 꿈은 다 이뤘기 때문에 이번 꿈 또한 이룰 것이라 담담히 말하는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있었다.

민 교장은 누구나 쉽게 기부하는 세상을 꿈꾼다.

"사람들이 보통 돈이 없어서 기부를 못 한다고 하는데 액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수입의 일정부분을 적금하듯 떼어놓고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쉬운 일입니다. 기부하고 나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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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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