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일 제독. 사진=해군 제공
손원일 제독. 사진=해군 제공
해군 창설의 주역이자 초대 해군참모총장, 제5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손원일(1909-1980) 제독이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원일 제독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11일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을 창설한 주역이다.

손 제독의 해방병단 창설엔 우여곡절이 있었다.

1945년 8월에 해군건설의 초석인 해사대를 결성하게 되고, 이어서 미군정청과 협의 끝에 1945년 11월 11일에 한국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했다. 해방병단 창설 초기, 인원 및 재정적 어려움으로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운영상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손 제독은 탁월한 협상력과 리더십으로 조선 수군이 폐지된 지 51년 만에 이 땅에 다시 해군이 탄생할 수 있었다.

손 제독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1946년 1월 현재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 초대교장으로 재직했다. 당시 직접 생도들에게 항해술을 가르치는 등 장교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창설 초 우리 해군은 군함이라 할 만 한 배는 한 척도 보유하지 못했다.

손 제독은 군함 인수를 위해 미국과 협상을 시도하여 1948년까지 총 37척의 함정을 인수하지만 이중에는 소해함, 지원함과 같은 비전투함이 고작이었다. 전투함 인수를 위해 고심하던 손 제독은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함정건조기금갹출위원회`를 결성하여 모금운동에 들어가고, 해군장병 및 해군부인회를 비롯해 국민들의 성금과 대통령 하사금을 합쳐 총 12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었다.

손 제독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전투함 4척을 구입했으며, 이때 구입한 백두산함은 6·25전쟁시 대한해협 해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리게 된다.

조선해안경비대가 국군으로 편입되면서 손 제독은 1948 년 12월 15일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참모총장으로서 충무공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몸을 삼가 바치나이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장병들에게 구체적 실천지침을 강조했으며, 해병대의 필요성을 절감해 1949년 4월 15일 신현준 중령을 사령관으로 진해에서 해병대를 창설하게 된다.

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정식 발족한 해군의 초대 참모총장을 맡았고 1949년에는 해병대를 창설했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으며 전후 복구기에는 국방부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국군의 날, 현충일 제정, 국립현충원 및 국방대학교 건립 등 군 현대화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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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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