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준비(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새해가 시작됐다. 공자만큼은 되지 못할 지라도 내 인생을 남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이지 말자는 다짐을 해본다. 새로운 다짐 중 하나가 바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법적 효력화 하기다. 얼마 전 우리 가까이에서 발생된 참변들을 떠올려본다. 결혼을 앞둔 딸, 예비 사위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진 지 10분이 지나 사망한 그는 자신이 사는 지역 대로에서 온수배관이 파열돼 죽음을 맞게 되리라고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꿈 많던 20대 청년은 입사 3개월 때 직장에서 책임을 완수하다 숨을 거둘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 인사도 못하고 떠나간 망자의 넋이라도 편안할 수 있도록 살아있는 사람들이 돌봐야 할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죽음도 있지만 죽음이 내 근처에 머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방접종도 학교에서나 할 정도로 주사바늘과 거리가 멀었던 필자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과 사망이 공존하는 곳이지만 필자가 근무 중인 부서의 특성 때문인지 탄생보다는 사망을 훨씬 많이 접한다. 혈액투석 파트에서 일한 시간의 딱 두 배를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근무했는데, 임종을 앞둔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의 보호자까지 보살펴야 했다. 시간을 지나오고 보니 삶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은 스스로 준비해 정리 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질병과 치열하게 싸우다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환자는 그저 가족의 판단에 맡겨진다. 의료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1% 희망의 가닥만 보여도 최선으로 행동한다. 평소 삶의 가치관이 어떠했으니 이 이상의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숨을 연장시키는 약물은 쓰지 않겠다거나 하는 결정은 환자나 가족만이 할 수 있다.

환자가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정신적 판단력뿐 아니라 제대로 된 말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 무슨 결정을 할 수 있고, 결정을 했다 한들 어느 누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결국 남아있는 가족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족들은 어떤 선택에서도 죄책감을 갖게 되고 자기 위안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전연명의료 제도는 지난해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 개인이 임종단계인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연명의료에 대한 선택과 호스피스에 관한 뜻을 기록한 것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다. 연명의료의 종류에는 심폐 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등이 해당된다. 19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한 의향을 직접 문서로 작성할 수 있다. 이것을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보관하면 법적 효력이 발생돼 어느 병원에서든 확인이 가능하다.

필자는 아름답게 살기 위한 계획과 목표 속에 언제 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준비도 같이 하려한다. 재작년 딸의 첫 돌잔치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남편과 함께 죽음에 대한 생각도 나눴다. 이제 제법 대화가 되는 딸은 옆에서 "응, 네, 그렇구나"와 같은 추임새를 한다. 다가오는 명절에 부모님께도 전달하리라. 사랑하는 가족은 나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다. 이선미 을지대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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