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칼럼] 위가(胃家), 인체의 큰 강

한의학에서 경락은 인체의 뿌리인 오장육부와 인체의 줄기인 팔, 다리를 연결해주는 인체의 강줄기라고 볼 수 있다. 모두 열 두 줄기인 경락은 12개월을 의미하기도 하고 고대 중국대륙에서 서해로 흐르던 12개의 강에서 유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체에는 경락보다 더 중요한 가장 큰 물줄기가 있는데 이는 바로 입에서 항문까지 긴 관으로 이어진 소화기 장관(腸管)이다.

매일 먹는 음식에 포함되거나 직접 마시는 물은 약 1.5ℓ에 불과하지만 침샘 1.5ℓ, 위액 3ℓ, 쓸개즙과 췌장의 소화액 1.5ℓ 및 소장의 소화액 2.4ℓ 등으로 위장관에는 대략 10ℓ의 물과 소화액이 흐르고 있다. 전신의 혈액량이 5ℓ이니 무려 혈액의 두 배에 가까운 물이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흡수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외부의 음식물은 입에서부터 컨베이어 벨트처럼 물에 둥둥 떠서 식도, 위, 소장, 대장을 통해 소화와 흡수를 거쳐 항문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을 거친다.

한의학에서는 위장관 전체를 `위가(胃家)`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안 식구 모두를 `김가(金家)`라고 부르듯이, 위가 역시 위 뿐 아니라 전체 소화기 장관의 대표이름이다. 우리 몸을 관통하는 큰 강인 위가의 기능이 강하면 영양섭취의 효율이 커지기 때문에 식사량은 줄어들어 체중이 늘지 않고, 안색이 좋아지며, 면역력이 강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위가의 기능이 떨어지면 음식을 많이 먹어도 제대로 섭취가 되지 않아 잘 체하면서도 허기감이 계속 되며 과식이나 폭식으로 체중이 늘고, 얼굴이 붓거나 푸석푸석해지며 면역력도 떨어져 감기 등 여러 질병에 잘 걸리게 된다.

따라서 어떤 질병으로든 한의원에 내원하면 한의사는 제일 먼저 진맥을 통해 위장관의 소화흡수 기능이 정상인지를 살펴보는데, 진맥에서 나타나는 위가의 기능을 `위기(胃氣)`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난치성 질환이라도 위기가 정상이면 잘 치료되고, 반대로 단순 감기라도 맥에 위기가 없다면 잘 낫지 않는다.

1300년 경 중국 원나라 때 의사 이동원은 열(염증)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치료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각종 질병에 병을 직접 공격하기 보다는 체력을 보강하는 방법을 통해 완쾌시켰는데, 이로써 황하 이북 지방의 명의로서 큰 이름을 날렸다. 이후 각종 난치성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으로 위가를 먼저 보강하는 새로운 의학 이론과 치법을 완성하고 `보중익기탕`이라는 처방을 창안했다.

이동원의 보중익기탕은 질병을 대함에 있어 질병 자체보다 인체의 건강상태를 먼저 살피도록 의사의 관찰 대상을 바꾸게 한 한의학 역사의 획을 그은 처방인데, 보중익기탕의 변방은 수백 가지에 달해 통칭 `의왕탕(醫王湯, 의사의 가장 중요한 처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위가를 인체의 뿌리인 오장육부만큼 중요한 생명의 근본으로 인식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인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강줄기인 위가의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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