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기탈리스와 초오(草烏), 민간에서 숨쉬는 한의학

디기탈리스라는 식물이 있다. 1775년 경 영국 의사 윌리엄 위더링 박사는 나이 많은 여성 민간 치료사가 `어떤 의사들도 고치지 못하는 부종`을 치료한다는 소문을 주목한 후, 그녀가 스무 가지 넘는 약초들을 섞어서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을 보고 분석해 한 식물이 실제로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심장을 강하게 뛰게 하는 이 약초에서 현대의학 심장병 치료분야가 시작됐는데 현재까지도 디곡신이라는 약재로 개발돼 심부전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 디기탈리스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비의 명약으로 전해져 내려왔지만 이 약초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서 조금만이라도 과량 투여하면 심장이 멈추기도 한다.

한의학에도 디기탈리스와 비슷하게 심장을 강하게 뛰도록 하고 부종을 없애며 게다가 독성까지 강한 약재가 있는데 바로 초오(草烏)와 부자(附子)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큰 덩이의 초오를 밭에 뿌리면 이듬해 옆으로 작은 덩이가 줄기처럼 달리는데 `곁에 달려있는 덩이`라는 뜻으로 `부자`라고 하기에 초오와 부자는 같은 약재라 할 수 있다. 초오와 부자는 사극 드라마에서 대역죄인에게 임금이 내리는 사약의 주요 성분이 되는 약초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서양의 디기탈리스가 의료의 전문 영역으로 흡수돼 민간에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초오와 부자는 지금도 민간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약재다.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의 과정을 심장도 벗어날 수 없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장애, 관절통증, 부종, 호흡곤란 등 증세가 발생하는데 한의학을 배우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초오를 달여 먹으면 감쪽같이 모든 증상이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초오의 독성을 없애는 방법은 명태나 돼지족발과 함께 달여 복용하는 것인데 60세 이상 관절염 환자는 대개 한 두 차례 복용했던 경험이 있다고 하며, 이렇게 초오를 복용하는 방법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이었다.

강력한 심부전 치료제인 디기탈리스 못지않게 독성이 강한 초오와 부자를 어떻게 민간에서 독성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해 스스로 질병치료에 응용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전란 속에서 국책사업으로 탄생해 왕실의 의학 지식을 민간에 보급시킨 동의보감은 세계 의학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사례다. 7년간 계속된 임진왜란으로 농토의 70%가 훼손돼 기아와 질병이 끊이지 않았고 전 국민의 삶이 더없이 피폐했던 시기에 국가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책임으로서 의서를 편찬, 민간에서 질병을 치료하게 한 방편이 동의보감이다. 이런 동의보감에서 감초보다 더 많이 처방에 응용된 약재가 바로 초오와 부자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 지천에 널려있던 부자와 초오는 독성만큼 강한 치료효과로 서서히 민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재가 됐고 각종 원인으로 발생하는 혈액 순환장애와 만성 통증에는 필수 약물로 여겨졌다. 국가의 의학 지식의 보급으로 맹독성 약초까지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체득한 민간의 경험들은 우리나라 한의학의 또 다른 경쟁력이 아닐까 한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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