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칼럼] 진맥의 의미

나무가 뿌리힘만으로 꼭대기까지 물을 밀어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10 미터내외다. 하지만 소나무, 참나무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무가 10미터 이상 자라는 것은 나뭇잎의 호흡과 수분증발작용으로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병든 나무를 치료하는 나무의사는 나뭇잎 상태를 보고, 뿌리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나뭇잎이 번성하다면 뿌리도 깊고 튼튼하고 나뭇잎이 성글면 뿌리도 약하다. 이처럼 나뭇잎은 햇빛을 받고 호흡을 하며 뿌리는 땅속에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는 등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서 나무라는 전체의 생명을 유지함에 있어 서로 중요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심장 박동을 심장 자체의 힘만으로 인식하지 않고 오장육부의 협력에 의해서 발생하는 `생명 본래의 원천적 기운`, 곧 원기(元氣)로 인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부에서 나오는 땀과 근육에서 소모하는 영양분이 심장으로부터 혈액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인체의 장기 또한 심장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아닌, 혈액을 끌어와 활용함으로 심장의 순환이 원활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위장관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간장은 혈액을 만들며 폐는 대기압을 인체로 끌어들여 심장을 돕고, 신장은 몸에 소변을 배출해 균형을 유지하는 등, 각각의 장부가 자신의 역할을 하며 전신의 순환을 함께 이뤄내는 것이다.

이렇듯 한의학에서는 심장과 나머지 장부와의 관계를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인식, 심장에서 전해지는 맥박의 변화가 모든 장부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본다. 만약 특정한 장기가 제 기능을 잃어 심장으로부터 혈액을 끌어다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심장 박동 또한 특정한 패턴으로 바뀌게 된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한의사는 진맥을 통해 이와 같은 미세한 변화를 알아내는 것이다. 오장육부가 어느 한 장부도 막힘이 없어 완전한 혈액 순환을 이루는 상태를 건강한 맥상으로 보며 이를 `화(和)·완(緩)·서(舒)·창(暢)`, 즉 `온화하며 완만하되 막힘이 없이 펼쳐진 상태`로 표현한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맥이 바로 이러한 형상이다.

한의학은 진단적인 관점에서 볼 때, 스트레스와 생활습관, 노화 등 원인으로 굳고 뻣뻣해져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긴 맥상을, 부드럽고 탄력있는 어린아이의 맥상과 같이 되돌리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의사는 이와 같은 맥상의 변화를 치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요컨대 숙련된 나무의사가 나뭇잎을 살펴 뿌리를 짐작하듯이, 숙련된 한의사는 진맥을 통해 오장육부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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