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기씨
박흥기씨
"지금 들어오는 시내버스도 저상버스가 아니네요."

19일 오전 10시. 대전 서구 둔산동 시청역에서 대덕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이동하기 위해 617번 버스를 기다리던 박흥기(50·뇌병변 1급)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탈해했다. 617번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같은 노선 버스를 40분 동안 2대나 보냈지만 모두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였다.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던 그의 의지는 언제나처럼 `이동권 제한`이란 턱에 걸려버렸다. 전동휠체어를 돌려세운 그는 결국 휴대폰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장애인콜택시를 불렀다.

대전시장애인문화예술지원센터 대표와 자립센터 인권옹호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날 장애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자장면데이` 준비에 나서는 길이었다.

"호주 등 선진국의 시내버스는 100% 저상버스고 대중교통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이동권을 확실히 보장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아쉬운 점이 많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장애인의 날`(20일)이 법정기념일이 된 지 27년이 됐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에게 하루 하루는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일상`이다.

정부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을 기조로 장애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체감의 정도가 요원한 실정이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박 씨에겐 인도가 차도보다 안전하지 않다. 파손되고 울퉁불퉁하게 채워진 보도블럭은 휠체어가 넘어지거나 방향이 급하게 틀어지는 위험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위험해도 그가 차도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수동휠체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장애인용 화장실은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겐 접근조차 어렵다. 각도가 안맞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박 씨는 "비장애인들에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곳이 장애인들에겐 마치 전쟁터와 같다"며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나 행정도 많이 달라졌지만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도 여전히 제자리다. 그는 대표적으로 문화콘텐츠에 장애인을 배제하는 점을 지적했다.

"만화책이나 인형 등에 장애인 캐릭터나 장애인 인형을 본 적 있나요? 비장애인만 등장하는 문화콘텐츠가 `차별`을 조장하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날 오후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열린 장애인정치참여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도 참석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도 그는 한 번도 찡그리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이번 결의대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가져다 줄 것이란 희망을 그에게 갖게 했다. "정책에 속도를 내게 하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죠. 차별과 차이가 없는 사회를 위해 함께 나아가면 좋겠어요." 강은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흥기씨
박흥기씨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