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주민총회 참석기

레겐스베르크 주민총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주민 대표. 이날 주민총회에서는 `방과 후 음악학교 통합` 안건을 두고 1시간 가량 주민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사진=부산일보 조소희 기자
레겐스베르크 주민총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주민 대표. 이날 주민총회에서는 `방과 후 음악학교 통합` 안건을 두고 1시간 가량 주민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사진=부산일보 조소희 기자
분권형 개헌으로 `내 삶을 바꾸는 진짜 자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지난달 13일과 14일 직접 주민 발안과 재정 주민 투표를 통해 공동체의 살림을 직접 운영하는 스위스 주민 총회(게마인데총회)에 참석해 분권형 개헌에 따른 자치의 가능성을 엿봤다.

◇방독면 교체 비용까지 논의 = 지난달 13일 스위스 바젤 주에 위치한 시자크 주민총회(게마인데총회)에는 130여 명의 주민들이 참석했다. 이번 총회는 시자크도르프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열렸다. 4시간 동안 진행되는 회의에도 중간에 이탈하거나 나가는 이는 없었다. 이날 마이크를 들고 직접 의견을 개진한 사람만 29명. 시민들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한 건 한 건의 예산안을 검토했다.

이날 총회는 2017년 마지막 총회인 만큼 한 해의 예산안을 정리하고 2018년 예산을 확정했다. 지난해 시자크 지역은 한 해 예산으로 280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304억 원)을 투입했고 총 3900스위스프랑(424만 원)의 적자를 봤다.

주민들은 적자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제기된 의견에 대해 각각 찬반을 표했다. 2018년에 있을 소방 호스와 방독면 전면 교체 비용을 줄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곧장 반론이 제기됐다. `안전은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다`는 반론에 주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대신 이들은 반려동물 세금을 올리는 데 찬성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은 내년부터 50스위스프랑의 세금을 더 내야한다. 이 밖에도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스링크장 개보수사업 부분 축소, 도서관 이용시간 30분 줄이기 등이 대안으로 나왔지만 모두 부결됐다.

피터 뷔서 시자크 주민총회 의장은 "더 이상의 주장·반론이 없을 때까지 `끝까지 듣는 것`이 주민 총회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헥터 하이니만 씨는 이날 기타 의견으로 "마을의 묘지가 포화 상태다. 이대로 가다간 2-3년 안에 묘지가 다 찰 것"이라는 의견을 냈고, 이 의견은 집행부에서 검토한 뒤 다음 총회 때 논의된다. 하이니만 씨는 "주민총회에 오지 않으면 불만을 참고 살아야 한다"며 "갈등을 해소하러 주민총회에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과후 교육도 주민이 결정 = 다음날 취리히 시 인근에 위치한 레겐스베르크 지역에서 열린 주민 총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일 오후 7시 30분 영하의 날씨에도 58명의 주민들이 주민총회를 찾았다. 안건은 총회 10일 전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된다. 2015년부터 2년 간 레겐스베르그 주민총회 대표를 맡았던 한스 베그뮐러 의장은 30분 전부터 주민 한 명 한 명을 악수로 맞았다.

이날 안건은 인근 지역과 방과 후 음악학교를 통합 운영하는 것. 교육부가 없는 스위스는 방과 후 교육과정·학교 통폐합 변경도 지역 주민들의 주민총회에서 결정한다. 베그뮐러 의장은 음악학교를 통합하면 1년 예산의 3%를 절감할 수 있고 이를 통합 학교 악기 구입비로 쓸 수 있다고 안건을 소개했다. 그러나 곧 이어 주민 보코 시저 씨가 음악학교가 멀어진 탓에 아이들이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줄까 걱정된다는 반론을 냈다. 한 시간 동안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결과는 41 대 17로 통합으로 결정났다.

레겐스베르그의 경우 100만 스위스프랑(한화 14억여 원) 가량 드는 사업은 주민총회 참석자 3분의 2가 찬성하지 않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도로나 다리를 만들 때도 투표가 진행되며, 건설 사업의 경우 세 부담이 높아 주민들이 4-5번의 총회를 통해 2-3년 씩 필요성을 검토한다.

세입을 중앙정부가 틀어쥔 채 배분하는 돼지여물통 정치(정부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다투는 모습이 마치 돼지들이 여물통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 대신 자신이 낸 세금으로 알뜰 살뜰 살림을 운영하려는 시민들의 참여가 자리했다.

보수·진보로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면 어떨까. 주민들끼리 편이 갈리는 정파 다툼은 일어나지 않을까. 레겐스베르크 주민총회에 참석한 스테판 뮐러 씨는 "주민총회에는 20-30대보다는 50-60대 어르신들이 많이 참여하므로 다소 보수적인 결정을 한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지역의 현안은 `주민편의`라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하다 보니 소속 정당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한국 지방신문협회 스위스 취리히=부산일보 조소희 기자·정리=대전일보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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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 시자크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부산일보 조소희 기자
지난해 12월 14일 시자크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사진=부산일보 조소희 기자

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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