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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주름진 벽돌 사이 천년 역사와 숨바꼭질

2017-11-07기사 편집 2017-11-07 16:48:50

대전일보 > 기획 > 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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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흐르는그곳 골목길] ⑪ 홍성 홍주성길

첨부사진1홍주아문. 사진=김정원
"홍주읍성 안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 옛날에는 홍주읍성 안쪽이 중심지였거든. 사람들도 많고 정이 넘쳤었어."

충남 홍성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천년 역사를 품고 있는 홍주성길은 한국사의 축소판을 경험할 수 있어 골목길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있는 홍성 홍주읍성(홍주성)은 홍주 관아를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성곽 밖에 마을이 조성되는데 홍주성의 경우 성곽 안으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가지처럼 이어진 골목길 곳곳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등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현재에 머물면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홍주성 안에 위치한 홍성군청을 중심으로 객사와 적산가옥 등이 위치한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홍주성길을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직접 걸어봤다. 홍성군청 입구에서는 이 마을을 한번에 볼 수 있다. 홍성군청 입구에 위치한 홍주아문과 주변 고목이 위엄을 풍긴다. 홍주목사가 행정을 하던 안회당의 외삼문인 홍주아문은 현재 남아 있는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홍주아문을 지나면 오관리 느티나무 두 그루가 눈에 띈다. 수령 650여 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홍주 승격을 기념하며 심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홍주가 목으로 승격한 햇수가 650여 년이 됐고, 느티나무 또한 오랜 세월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나 들어가면 동헌인 안회당, 여하정 등 건축물이 현존하고 있다. 영화의 오버랩(overlap)기법이랄까. 현재와 과거의 장면이 겹쳐서 보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홍성군청 입구를 기준으로 바라보고 서면 좌측에는 홍주성 남문과 홍주성 역사관이, 우측에는 오관리 골목길과 홍주 객사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홍주성의 성곽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됐는데 이곳은 과거 법원·검찰, 세무서가 위치했다고 한다. 홍주성 주변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이 바뀔 때 군청, 경찰서, 법원·검찰청 등 5개의 관청이 있어 오관리라고 불렸다. 해방 이후에도 이곳은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홍성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한건택 내포문화관광진흥원장은 "현재 군청은 그대로 있고 법원·검찰청 자리에는 옥사와 잔디밭이, 세무서 부지는 홍주성 역사관이, 경찰서 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했다"며 "관공서가 모여 있다 보니 주변에는 식당과 상가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홍성군청 앞 큰길 사이 연결된 골목길 안에는 술집들이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저녁이면 좁다란 길에서는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왔다. 불과 20여 년 전일이다. 공무원 등 직장인들이 퇴근길 하루 피로를 풀기 위해 간단한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는 술집을 찾았는데 이곳에는 흥을 돋우는 작부들이 있어 이 골목길은 일명 '작부집 골목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골목길은 198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다 모두 이곳을 떠났다. 현재 빈 점포들만 남아 거미줄이 쳐져 있다. 당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없다. 지금도 문을 열면 젓가락 장단과 노래가 울려퍼질 것 같다.

작부집 골목길을 지나 홍주성 북문 방향으로 걸어가면 적산가옥 골목길이 이어진다. 이 일대에서는 홍주읍성 북문지 주변 성곽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여기부터는 고지도를 보면서 걸으면 좋다. 우리 건물을 부수고 일제식 건축물이 지어진 적산가옥과 일제강점기 이후 지어진 한식 가옥이 어우러져 주거지가 형성됐다. 좁은 길인 소로가 미로처럼 연결돼 집들이 촘촘하게 모여있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철거됐다. 적산은 자기 나라의 영토나 점령지 안에 적국의 재산 또는 적국인의 재산을 뜻하며, 우리나라에서 적산가옥은 해방 후 일본인들이 한국에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을 말한다. 나무가 우거진 적산가옥을 마주하게 된다. 옛 객사 자리에 지어진 적산가옥이다. 홍주객사는 홍양관이라 불렸는데 홍주성에서 가장 큰 관아건물로 한응필 목사가 43칸으로 수리했다고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1921년 홍성공립보통학교의 건물로 사용된 후 일본인에 의해 훼손됐고, 그때 지은 적산가옥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주변에는 적산가옥 몇 채가 남아 있다. 골목길 담장에는 홍성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반대편에는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타고 올라와 감싸고 있다.

인근에는 홍주성의 동문인 조양문이 자리하고 있다. 고즈넉한 적산가옥 골목길을 따라 걸어나오면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다.

홍주읍성 안에서 70여 년째 살고 있는 조수형(74) 씨는 "지금은 조양문을 중심으로 성 밖이 번화가이지만 예전에는 홍주읍성 안쪽이 번화가였다. 1990년대부터 쇠퇴하더니 이젠 마을이 조용해졌다"며 "홍성군이 홍주읍성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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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작부집 골목길로 불리던 골목이 흔적만 남아있다. 사진=김정원
첨부사진3옛 객사 자리에 위치한 적산가옥. 사진=김정원
첨부사진4적산가옥 골목길, 사진=김정원
첨부사진5적산가옥 골목길. 사진=김정원
첨부사진6적산가옥 골목길. 사진=김정원
첨부사진7조양문(1970년대). 사진=홍성문화원 제공
첨부사진8조양문(1910년대). 사진=홍성문화원 제공
첨부사진9조양문(1930년대). 사진=홍성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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