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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수탈' 흔적 홍주읍성, 옛 모습 되찾아

2017-11-07기사 편집 2017-11-07 16: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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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31호로 지정된 홍성 홍주읍성(홍주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시대 초기 토성으로 당시 홍성지역의 호족이었던 운주성주 홍규가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때 석성으로 크게 다시 쌓아 조선 문종 때 완성됐다. 이후 보수가 이뤄지다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한다. 월계천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성의 서문 남쪽에 수로를 만들었고, 성의 둘레도 늘어났다.

홍주성 길이는 전체 1772m 중 현재 800m가 남아 있다.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과 동문인 조양문, 동헌인 안회당, 여하정이 남아 있다.

홍주성은 4개 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문과 북문은 없어지고 동문인 조양문마저 철폐하려 했으나 홍성백성들의 반대로 지켜낼 수 있었다. 동문인 조양문은 일부 파괴됐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해 옛 모습을 찾았다. 북문지는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철거된 후 최근 복원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조양문은 본래 망일문이라고 불렸다. 조선 고종 7년(1870) 한응필 목사가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때 세운 문루이다. 이때 흥선대원군이 동문(조양문), 서문(경의문), 북문(망화문), 동헌(안회당), 외삼문(홍주아문), 내삼문(정중문)의 현판 글씨를 직접 썼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남문은 문루가 없다.

조양문은 1906년 항일의병이 일어나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는 사람과 차량들이 조양문을 통과했다. 1975년 해체 복원된 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홍성군은 2013년 12월 홍주성의 남문을 복원하고 홍화문으로 문의 이름을 정했다.

현재 홍성군은 홍성 홍주읍성 복원사업을 펴고 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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