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역할을 부여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 100일이 다 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과학기술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박기영 교수를 본부장으로 임명했으나 각계각층의 거센 반발에 자진사퇴로 끝이 났고, 과기혁신본부에 부여한 예산권은 인사 잡음에 휩싸이면서 권한 이양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협상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하반기 교체 예정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기관장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5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새 정부의 과기혁신본부는 한 해 20조 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심의·배분해 연구 개발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과기혁신본부를 신설한 것을 두고 `옥상옥`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일 먼저 제기됐다. 국가기술연구회(NST)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위에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올라앉고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총괄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조직의 역할뿐 아니라 컨트롤 타워의 수장을 가리는 절차도 큰 논란이었다. 박기영 교수는 과거 황우석 사태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청와대에서 박 교수의 임명을 발표하자 과학기술계는 물론 정치권과 시민사회 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반발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임명 나흘만에 자진사퇴로 끝이 났지만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의 무용론까지 불거지며 사퇴 이후에도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박 교수의 임명으로 홍역을 치른 청와대는 후임 인사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과기혁신본부장 선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기혁신본부의 핵심 권한인 예산권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본부장 인선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과기혁신본부에 연구개발 예산의 심의·배분 조정 권한을 줬지만 기재부가 반대하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기본법 등 법·제도의 개정이 필요한데 본부장 인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동시에 과기혁신본부가 진용을 갖추지 못하면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를 비롯한 한국철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8곳의 출연연 기관장 인사도 덩달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선거 전부터 제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공약을 내세우고 과학기술계의 혁신을 주창해 왔지만, 100일이 지나고 남은 것은 인사갈등과 부처 이기주의뿐"이라며 "이 같은 상황이라면 새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고, 정부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해 자문하는 이들의 역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빨리 과기혁신본부를 중심으로 한 체계가 정립돼 과학기술계의 적폐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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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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