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걷는 것도 힘들어서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걱정이에요."

17일 오후 2시 만난 주모(84·여)씨는 비에 젖은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4차선 도로를 서슴없이 건넜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에 최고기온 30도를 웃도는 고온까지 겹쳐 폐지를 줍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야 하기 때문에 숨 돌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그는 "매일 오전 4시부터 7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루에도 두세 번 재활용 쓰레기를 모은다"며 "날씨가 더워도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등 고온다습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폐지줍는 노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전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올해 17일까지 대전지역 온열질환으로 인한 출동건수는 3건이다. 지난 14일 충북 청주에서는 폐지를 줍던 70대 노인이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했던 지난해엔 16건의 출동 중 약 37%가 6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올해 역시 지난해 못지않은 더위가 예상돼 노인들의 여름철 건강에 대한 주의가 각별하게 요구된다.

지난 주말부터 계속된 잦은 비도 문제다. 비에 젖은 폐지는 일반 폐지보다 무거운데다 가격도 감액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전시 폐지 가격은 ㎏ 당 110-130원 정도이다. 10일 젖은 폐지 35㎏을 고물상에 팔러 온 대덕구에 사는 조모(62)씨의 손에 쥐어진 금액은 단돈 3000원 뿐이었다. 조모씨는 "운 좋게 고물이나 고철을 주워서 리어카로 한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팔면 2만 원 정도 벌 수 있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하루에 두 번도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에 대한 행정적 조치는 없는 실정이다. 이들은 길거리 곳곳에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느라 교통사고의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시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336건으로 전체 노인 교통사고의 약 31%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교통안전에 대한 행정적인 조치는 진행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대전시는 폭염에 대비해 지역 경로당 21곳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노인안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정책은 없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여름철 건강관리법 등의 교육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을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지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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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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