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과제 직접 수주 자율성·융합연구 저해

새정부 출범 후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어갈 인사가 속속 내정·임명되는 가운데 그동안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옥죄어 온 PBS(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의 개선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신설되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심의·조정 및 성과평가를 전담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제도개선이 용이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21일 정부출연연 등에 따르면 PBS는 출연연구기관 연구사업비의 편성이나 배분, 수주, 관리 등 제반 시스템을 과제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된 1996년 이전에는 35-40% 정도 국가가 연구원 인건비를 부담했었는데 이를 출연연이 직접 연구 과제를 수주해서 자체 인건비를 충당하도록 했다.

PBS가 지속된 20년 동안 연구환경은 크게 위축됐다. 지난 2015년 기준 25개 정부출연연의 예산은 정부 출연금 40.7%(1조 8600억 원), 자체수입 59.3%(2조 7107억 원)로 구성돼 있다. 자체수입은 PBS를 통해 연구자들이 직접 정부·민간 위탁사업을 수주해 예산을 확보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인건비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부·민간의 PBS 과제 수주에 몰두했고, 연구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불공정 경쟁이 유발되는가 하면 과도한 과제 수행으로 연구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에 과학기술계에서는 새 정부가 그동안 부작용이 많았던 PBS를 개선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복합 연구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PBS의 폐지는 불가피하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현행 PBS는 연구 성과의 축적이 부재하고, 연구성과 공유가 거의 없다"며 "정부부처마다 각자 필요한 과제를 내놓기 바빠, 융·복합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연구현장에서는 `사전평가 제도`를 강화한 연구개발 펀딩 에이전시(R&D funding agency)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예산에 대한 상당한 권한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제도의 개선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펀딩 에이전시는 현재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연구기획·선정·관리·평가를 일원화하고, R&D 사업에서 인건비와 경상운영비는 사업비로부터 분리해 출연연에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것 등이 골자다. 또 앞으로 공무원들이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출연연이 풀어야 하거나, 도달해야 하는 지점 등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해야 한다는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연연의 다른 관계자는 "사전평가제도를 강화하면 제대로 된 연구기획과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미 많은 국가에서 사전평가제도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PBS는 관료들이 기술 개발 방향을 제시해, 연구자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문제점이 있다. 관료들은 기술의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품은 문제점의 해결이나, 변화되는 미래상 제시가 필요하다. 그러면 연구자들이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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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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