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6월 런던 교외에 있는 리치동물원에 전속 수의사 한사람이 부임했다. 동물원에 전속 수의사가 임명된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는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보통 소나 말 개 등 가축들을 치료해주는 수의사도 제대로 없는 시기였다. 아직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제대로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세계의 동물원에서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수용되어 사육되고 있었으며 그들이 병에 걸리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이 병에 걸리면 동물원 관리자는 그 동물을 돌보고 있는 사육사와 의논했고 사육사는 일반 의사나 수의사에게 의논했다.

그러면 야생동물들을 치료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일반의사나 수의사는 적당하게 처리했다.

원숭이가 병에 걸리면 일반의사나 수의사는 암과 같은 진단을 하고 치료를 했다. 사람이나 원숭이는 같은 유인원에 속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진단과 치료는 대부분이 엉터리였으며 그런 치료를 받은 원숭이의 대부분은 죽었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큰 병에 걸린 야생동물들은 그 대부분이 죽었는데 그들은 모두 값비싼 돈으로 구입한 동물들이었다.

세계에서 최신 시설을 갖고 있는 리치병원에서 뒤늦게나마 전속 수의사를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야생 동물들을 치료하는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가 있을까.

동물원에서 일하는 관리자나 사육사들은 임명장을 받고 나타난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는 여자였다. 그것도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한 젊은 처녀였다. 여배우처럼 아름답게 생긴 처녀였다.

그런 수의사가 나타나자 그때까지 동물원의 야생동물들을 돌보고 있던 마스 영감과 사육사들이 시무룩해졌다. 킬킬 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과연 그런 연약한 여자가 사자니 범 등 맹수들을 진찰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그들 맹수의 밥이 되지나 않을까.

그 수의사가 부임했을 때 동물원 안에 있는 아프리카 관의 한 우리 안에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는 에란드였다. 에란드는 소과 영양 종류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짐승이었다. 어깨 높이의 키가 1~8m나 되고 몸무게가 900kg이나 되었다. 소나 말보다도 덩치가 큰 종류였다.

그런 큰 야생짐승이 우리 안에서 피와 오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자궁이 뒤집어진 상태로 질 문 밖으로 나와있었다. 처참한 광경이었으며 그 녀석을 돌봐줄 사육사들은 그저 당황하여 우왕좌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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