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설표는 맨 뒤로 떨어져 가는 늙은 야크나 어린 야크를 천천히 추격하여 다른 무리들과의 거리를 더욱 벌어지게 만든 다음 그놈의 등 위로 올라탄다. 그리고 앞발로 그 놈의 뿔을 콱 잡고 마치 자전거의 운전을 하듯 그놈을 몰았다. 그러면 공포에 질려 날뛰는 야크는 뿔을 잡고 있는 설표의 조정을 받는 듯 얌전하게 달려갔다.

설표는 야크가 좀 얌전해지면 아가리로 목덜미를 물고 동맥과 신경줄을 더듬어 결국 쓰러지게 만든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도망가던 야크의 무리는 야속하게도 죽어가는 동료를 내버려 두고 도망간다.

그런데 세실교수는 다음해에 히말라야에 사는 원주민들도 볼 수 없었던 설표가 사모아를 사냥하는 광경을 망원경으로 목격했다.

그때 교수는 일단의 연구진과 함께 설표와 사모아의 생태조사를 하고있었는데 운 좋게도 양측을 한꺼번에 조사할 기회를 얻었다.

교수는 그때 망원경으로 고도 4000m쯤 되는 바위산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망원경의 초점에 사모아가 나타났다. 산악의 왕자라는 별명과 같이 정말 민첩한 놈이었다. 놈은 눈에 덮인 바위 위를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질주하고 있었는데 그때 300m쯤 떨어진 저쪽 바위 위에 설표가 나타났다. 사모아가 설표를 발견하고 크게 당황하여 전속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설표가 그렇게 당황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았다.

300m라는 거리가 있었고 민첩하고 빠른 놈이었는데 그렇게 겁을 먹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않았다. 사모아도 빨랐지만 설표도 빨랐다.

사모아는 바위 위를 껑충껑충 날 듯 뛰어가지만 설표는 아랫배가 거의 바위에 닿을 것 같이 낮게 질주했다. 무서운 속도였다.

"저 봐라. 설표와 사모아가 달리기 경기를 하고 있어."

조사단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하고 있었다. 환호를 할만 했다. 그건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세기의 달리기 경기였다.

300m의 거리가 있었는데도 사모아가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이유가 있었다. 설표가 거리를 줄이고 있었다. 설표는 속도에서도 사모아에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름길로 가고 있었다. 톱날 같은 산길을 보면서 지름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설표는 자기 몸보다도 긴 꼬리를 움직여 화살처럼 빨리 달리면서도 자유자재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300m의 거리가 200m로 그게 또 100m로 단축되고 있었다.

"달려라. 뛰어라."

조사대원들이 손에 주먹을 쥐고 성원을 하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럴 경우는 사람들은 약자인 사모아의 성원을 할 것 같았으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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