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예약·골프장 가명으로 경쟁자 내부고발 등 악용 우려 "부작용 최소화 법규 보완 절실"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자는 국민적인 공감 속에 시행된 청탁금지법이 9월 28일 시행 후 1주일만에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상을 몰고 오고 있다.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더치페이가 시작되고 접대 문화가 줄어들어 청렴사회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전 국민을 감시자로 만들어 사회에 불신이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 법 시행 이후 공직사회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 만남 자체를 자제하는 분위기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승진 등 인사를 앞두고 경쟁자 비방 투서가 종종 있었던 공직사회와 교원사회는 김영란법이 내부고발을 촉발해 경쟁자를 떨어뜨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며 동료들끼리도 모임 갖는 것을 꺼리고 있다. 대전시청 공무원 김모씨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가 일상 대화였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며 "하반기 인사철이 되면 모임은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고, 단독행동을 하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로에 대한 감시와 불신 탓에 고급 식당이나 골프장에서는 기관 이름이 사라지고 낯선 이름이 등장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란파라치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데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얼굴과 이름을 가명으로 숨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기관 간부 공무원 최모씨는 "법 시행전에는 `국`이나 `과`이름으로 예약을 했지만, 지난 28일부터는 예약판에 이름이 노출되는 것이 부담돼 아들 이름을 쓰고 있다"며 "심지어 동료들은 지갑을 열었을 때 공무원 신분증이 보이지 않도록 카드 뒤로 숨겨놓을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상태"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은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하객문화도 바꿔놓았다. 법 시행전만 해도 경조사비를 직접 들고 가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지만 최근에는 인터넷뱅킹으로 직접 보내거나 대신 접수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상하간, 동료간에 개인적인 감정과 호불호에 의해 언제든지 작정하고 골탕을 먹일 수도 있는 상황 자체를 피해가자는 의미에서다.

업계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장기화되면 결국 상대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면서 미풍양속과 충돌하고, 소비 위축과 같은 경제적인 피해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화훼, 골프 등 관련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역경제 침체가 현실화 되고 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의 안착을 위해서는 의심과 불신에 움츠러들기보다는 고질적인 접대와 청탁문화를 개선할 수 있도록 꾸준한 인내와 국민적 동참, 지속적인 법규 보완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경덕 배재대 심리철학상담학과 교수는 "그동안 미풍약속,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특정계층이 혜택을 받아왔고, 이제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보자는 과정에 있다"며 "막 시행된 단계여서 다소 혼란과 어려움은 있겠지만, 시행 초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사회적 소통이 단절되고 사회적·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 시킬 수 있도록 법규 보완을 통해 새로운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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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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