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주부 이정화씨, 출산후 폐 이식

"정말 오래됐네요. 전에는 생각만 해도 울컥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어요. 저조차도 가끔 잊고 살 정도로요. 하지만 잊히면 안돼요.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정화(39·사진)씨는 차분했다. 5년 전의 악몽이 기억나 괴로울 법도 하지만 그는 긴 시간동안 어려움을 겪으며 단단해졌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고 가해 기업들의 처벌, 이를 방조한 국가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며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이씨는 여느 임산부들처럼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TV 광고를 통해 살균제 제품을 알게 됐다. 어렴풋하게 기억나지만 광고에는 `99.9% 살균과 청소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었다. 대형 마트에 들러 이를 구입한 이씨는 그때부터 살균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임신 6개월을 맞은 4월 초 어느 날 밤, 이씨는 밤에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는 배가 불러도 이런 증상이 없었지만, 둘째 아이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산부인과에서는 아이가 크니까 숨이 찰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몇 미터도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어요"라며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폐는 조금 이상하다고 했어요. 양쪽이 모두 뿌옇게 사진이 나왔다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리고는 이틀만에 중환자실로 들어가게 됐다. 이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바로 다음 날 제왕절개수술로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 무렵 이씨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산모 8명이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 조사를 나온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은 그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를 물었다. 이씨는 그때 다른 산모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두 폐가 딱딱하게 굳는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질본 조사관을 만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살균제의 위해성은 1년이 지나서야 공론화됐다. 전국민이 공분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스러져갔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괴로워 하는 동안 가해 기업과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오히려 가해 기업들이 증거를 은폐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그는 말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씨처럼 직접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당사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건강해보이지만 사실 그는 폐 이식을 받았다. 이식을 받아도 건강을 되찾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때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모든 피해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잘 지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얼마 전 옥시 관계자들이 공식사과를 했지만 그건 우리에게 한 사과가 아니었어요. 손을 놓은 국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들의 형사처벌, 그리고 국가 차원의 진료 지원 등 실질적인 방안이 반드시 마련돼야 해요."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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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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