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별이 터진다 -대전일보 지령 20000호를 축하하며 -이정록
온 누리 생명을 어루만지고
동굴 깊이 들어가다 멈칫거릴 때
펜은, 그 빛의 무릎을 일으켜 세워
한발 더 어둠을 밝혀야 한다.
비탈 고사목은
제 썩은 몸통을 목탁삼아 기도한다.
마른 잎을 염주 알처럼 풀어놓는다.
펜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고사목
그 몸통 깊은 어둠과 회한에 잉크를 찍는다.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
겨울 끝자락 빙판 언덕을 넘을 때
글이란, 길가에서 기다리는 모래적재함이다.
괜찮아요. 힘내요. 곧 봄이에요.
펜은, 그 모래적재함에 핀 민들레꽃이다.
콩깍지 쓴 욕망과
소금 같은 자존을 빚어 삶을 숙성시킬 때
실금이 가고 어둠이 지나가고 돌멩이가 날아와도
끝내 항아리 속 검은 눈동자를 감지 말아야 한다.
자서전을 쓰듯
유언을 쓰듯, 펜은
항아리의 테두리를 철심으로 묶고 있어야 한다.
발길 그리운 옥상이나 호젓한 뒤뜰에서
녹슨 면류관의 가시가 되어야 한다.
말라붙은 저수지의
마지막 웅덩이는 하늘의 눈망울이다.
지상에 되비친 하늘의 눈동자에
몸 구부려, 한 점 잉크를 찍는다.
별빛이 터지는 자리는
모두 펜촉에 찍힌 정곡이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시집`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의자` `정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동화 `귀신골 송사리``십 원짜리 똥탑` `미술왕`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저 많이 컸죠`
산문집 `시인의 서랍`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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