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20000호 특별취재] 남선기공·동아연필 등 눈길

올해 창간 65주년인 대전일보가 오늘로 지령 20,000호를 맞았다. 충청권 최고의 역사를 지닌 대전일보는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묵묵히 걸어왔다. 조폐창과 연초공장 대전 유치, 대전공업단지 조성, 아산만권 산업기지 건설, 대덕연구도시 조성 등 경제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대전일보에는 지역 기업의 역사가 기록돼있으며, 광고란에는 지역기업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는 다양한 광고들이 실려 있다. 1950년대 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창업해 대전일보 지면을 통해 얼굴을 알린 일부 기업들이 현재까지 성장·발전해오며 지역 대표경제계로 성장했다. 반세기 넘는 역사를 대전일보와 동반 성장한 장수 기업들을 살펴본다.

동아연필(1946년 창업), 진미식품(1948년 창업), 남선기공(1950년 창업), 조폐공사(1958년 대전 공장 건설), 성심당(1956년 창업) 등은 대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공작기계산업의 길을 닦은 남선기공은 올해로 설립 65주년을 맞아 대전일보와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1951년 4월에는 남선기공의 영업종목 안내 광고가 대전일보 지면에 등장했다.

1950년 3월 1일 창립한 공작기계전문회사 남선기공이 전화를 딛고 다시 영업을 재개한 것이다.

현재는 자동마찰용접기부터 최첨단 5측 머시닝센터 및 5축 가공기 SPHINX-5X160 개발 등 공작기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1946년 우리나라 최초 문구회사로 첫 발을 내딛은 동아연필도 전쟁 중에 건재함을 알렸다.

대전일보 1951년 6월 29일자에 제조업체인 `동아연필` 광고가 처음 등장했다.

일제하 대전시 삼성동에 설립됐던 공장이 전쟁 중에 여러 번 귀속재산 매각이 유찰된 끝에 어렵사리 불하가 이뤄져 다시 연필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대전을 연필산업 도시로 알린 동아연필은 1963년 연필을 수출, 1974년 동아교재를 설립해 크레파스와 물감 등을 만들어내며 현재 국내 중성펜 시장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해방의 혼란기였던 1948년 고 송희백 회장이 창업한 `대창장유사(현 진미식품)`는 1952년부터 활발하게 움직였다. 전쟁의 혼란을 딛고 고추장과 된장, 간장 등의 장류 상품을 출시하면서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가옥을 개조해 `대창장유사`로 출발한 진미식품은 1958년에는 군납업체로 선정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려 현재 대전에 본사를 둔 국내 대표 장유(醬油) 업체로 성장했다.

1990년대 상표권 분쟁으로 힘든 상황을 겪기도 했다.

당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대전일보에 게재했던 광고다. 대전일보 1954년 8월 6일자에는 `대창장유사` (현 주식회사 진미식품)의 `진미` 간장 광고가 처음으로 실렸다.

진미식품은 1990년대 `진미`라는 이름을 놓고 분쟁이 일어나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 옛날 대전일보에 게재된 광고를 복사해 소송을 진행했다.

타 장유업계에서 `진미`라는 상호를 등록하려 하자 자신들이 상대 업체보다 먼저 `진미`라는 상호를 썼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재판은 대전 진미식품의 승리로 돌아갔고 현재 `진미`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신문광고의 숨은 가치가 증명되는 대표적인 사건의 하나였다.

대전일보는 조폐공사 공장 유치 운동에도 앞장섰다.

대전일보 1954년 12월 15일자에는 `최적지로 유력시, 대전에 권련지 및 조폐지 공장`이란 기사가 실렸다. 대전시가 정부를 상대로 민영화한 권련지(卷煙紙)와 조폐지(造幣紙) 공장 유치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임지호(대전일보 사장 역임) 대전시장은 "이 사업이 정부가 보유한 170만 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공장으로 국내 최초 설립된다"고 밝혔다. 후보지로 대전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며 대전의 동광제지 공장을 지목했다.

1954년 12월 16일자에는 `대전에 설치 확정적`이란 제목 아래 `조폐지 공장 등 유치 운동 점차 활발`이란 부제가 달린 기사가 실렸다. 충남 출신 국회의원과 재경 충남 출신 인사들이 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진정·건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대전의 발전과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폐지 공장 유치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51년 10월 부산에서 창립한 한국조폐공사는 1953년 8월 서울로 본사를 이전했고, 1958년 6월 대전에 하루 생산량 15t 규모의 제지공장을 건설했으며, 1973년 4월 서울본사를 대전으로 이전한 데 이어 1987년 12월 대덕연구단지 내 본사와 기술연구소를 신축했다.

성심당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해 현재 대전의 대표 제과업체로 자리잡았다. 성심당은 1970년 12월 27일자 지면 광고를 통해 얼굴을 내밀었으며, 회사가 발전하면서 광고의 회수와 크기를 늘려 현재도 왕성한 광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성심당만의 독특한 빵을 구워내며 대전시민을 넘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는 등 대전지역 대표 향토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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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1954년 8월 5일자에 실린 대창장유사(현 진미식품) 광고.
대전일보 1954년 8월 5일자에 실린 대창장유사(현 진미식품) 광고.
대전일보 1952년 10월 23일자 11면에 2단8㎝로 게재된 동아연필 광고.
대전일보 1952년 10월 23일자 11면에 2단8㎝로 게재된 동아연필 광고.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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