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아산 세계꽃 식물원. 전희진 기자
아산 세계꽃 식물원. 전희진 기자
◇봄이 오는 길목은 아직 찬 기운이 남아있다. 계절은 멀기만 하다. 모란이 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이나마 왔으면 하는 이유다. 하지만 봄의 기운은 아산시 곳곳에서 피어난다. 조금 더 빨리 꽃을 볼 수 있는 곳도, 부지런히 봄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3월 초입의 아산은 봄을 준비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아산은 백제 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기름진 땅과 삽교호 등 자연이 만들어 준 풍요로운 선물도 받았다. 선조들이 남긴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관광지로서 더 할 나위 없다. 늦은 겨울, 혹은 이른 봄의 아산은 그렇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묵묵히 전통을 이어가는 곳, 외암 민속마을=입구에 들어서니 하늘로 우뚝 솟은 장승이 반긴다. 초가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설화산 동남쪽에 위치한 외암 민속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외암`은 외양간의 준말이다. 충청도 사투리로 외양간이 `오양간`이었던 것에서 유래됐다. 오양간이 오양골로, 다시 외암골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 30리마다 있었던 역이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엿장수나 생선장수가 마을로 들어오면 아이들에게 엿 하나 쥐어주고 길 안내를 시켰다고 한다. 마을 길은 높은 돌담 사이로 차 한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다. 돌담은 1m에 이르는 두께로 성인 목 정도 높이까지 쌓여있다. 본래 담 두께가 더 넓었지만 생활 편의상 조금 줄였다고 한다. 이렇게 쌓인 돌담은 마을 길을 따라 6㎞ 정도 뻗어있다. 지역 특성상 돌이 많아 가능했던 일이다. 돌담은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다. 동고서저의 지형 탓에 겨울 칼바람이 심했기 때문이다.

돌담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초가지붕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짚으로 지붕을 보수하는 중이다. 흔히 보기 힘든 광경에 관광객들의 플래시가 연신 터져나온다. 초가집은 이 지붕 덕분에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오랜 기간 짚을 말려 엮고, 다시 그것을 지붕으로 올리는 수고로움을 반복한 덕분이다. 오늘날의 외암 민속마을은 이들처럼 전통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만나다=아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현충사는 장군을 찾는 가족단위 나들이 객들로 언제나 붐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은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함선의 모형, 화포, 도검류 등을 전시해 단번에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충사는 긴 공원 형태로 구성돼 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본전에 장군을 모셨다. 입구를 거쳐 바로 보이는 이순신 기념관을 지나면 충무문이 나온다. 본전으로 향하는 길은 가까운 듯 하면서 멀다. 걷다 보면 등에 가볍게 땀방울이 맺힌다.

300여 년 전인 1706년, 아산 지역 유생들은 조정에 장군을 위한 사당을 세우기를 청한다. 이듬해인 1707년 장군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다. 현충사다. 하지만 160여년이 지난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떨어진다. 현충사도 서원을 향했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곧 장군을 모신 사당은 헐리게 된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1931년, 한국인 모두가 그랬듯 장군의 종가도 어려움을 맞았다. 장군의 묘소와 땅이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 푼 두 푼씩 돈을 모아 묘소와 땅을 되찾았고, 이듬해인 1932년 다시 현충사를 세우게 됐다. 1960년대의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른 봄에 만나는 꽃의 향연=꽃길이 열렸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아산 세계 꽃 식물원`은 세계 각지에 분포한 꽃들의 향기로 가득하다. 지난 2004년 개장한 세계 꽃 식물원은 총 규모가 2만 8000㎡, 온실이 1만 9800㎡에 달할 정도로 커다랗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온실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3000여 종의 식물로 가득하다. 가족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유다.

커다란 비닐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진한 꽃내음이 물씬 풍긴다. 향기가 강해 처음에는 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아주 잠시 동안만 그럴 뿐이다. 진한 향기는 곧 은은하게 퍼져나오며 코 끝을 적신다. 수 많은 식물들에게서 나오는 신선한 공기는 덤이다.

멀리서 새 소리가 난다. 새들은 쉴 새 없이 지저귄다. 앵무새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식물원은 앵무새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했다. 어린이 관람객들이 바닥에 모이를 뿌리자 앵무새들이 달려든다. 손을 뻗을 때 앵무는 나무 위로 날아간다. 아이의 표정이 이내 시무룩해진다.

하지만 다시 털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에 부모의 얼굴은 흐뭇하기만 하다.

◇고풍스런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공세리 성당=한국 천주교의 요람인 내포지역은 이존창 루도비코 사도가 복음을 전파한 곳이다.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성당 일대도 이존창 사도에 의해 천주 신앙이 전파됐다. 공세리 성당은 생각보다 큰 규모의 성당은 아니다. 성당 건물보다 별관과 기념관, 사제관등이 더 크게 보일 정도다. 하지만 성당이 내뿜는 고풍스런 향취는 압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기도 했다. 다소 낯선 고딕 양식이 친숙해 보인다.

미사 시간이 한참 지나서 성당에 들어갔음에도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의자 한 칸을 사이에 두고 모녀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람이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열중한다. 이들이 기도를 올리는 사이 한 연인이 들어온다. 쭈뼛쭈뼛 하더니 이내 자리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공세리도 모진 박해를 견뎌내야만 했다. 성당은 수 많은 희생을 뒤로 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본당은 1895년 6월 드비즈(Devise)신부가 부임한 이후 설립됐다. 간단한 기와집을 개조해 만들었던 성당은 몇 번의 공사를 거친 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윤선 아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아산은 외암 민속마을과 현충사 등 역사적인 장소와 아름다운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라며 "아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희진 기자

도움말=정윤선 아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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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당. 전희진 기자
공세리 성당. 전희진 기자
봄맞이 지붕 보수작업이 한창인 외암 민속마을 초가집.전희진 기자
봄맞이 지붕 보수작업이 한창인 외암 민속마을 초가집.전희진 기자

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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