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 박사 타계… 과학계 추모 분위기 확산

◇한국 원자력계의 대부인 故 한필순<사진> 박사가 지난 25일 새벽 심장마비로 타계하면서 과학기술계에 애도의 분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한 고문은 한국 표준형 원전을 개발하고 중수로용 핵연료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한국의 원자력 기술 자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원로중의 원로 과학자다. 대전일보에는 1990년대 초 원전 자립의 역사를 20회에 걸쳐 연재한 인연도 있다.

◇한필순은 누구인가=1933년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인 故 한 박사는 물리학자이자 공군사관학교 교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단장, 대덕공학센터장,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투철한 국가관과 신념을 보여준 인물로 과학기술계에 기억되는 인물이다. 특히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원자력 분야의 기술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하면서 아랍에미리트에 상용원전을 수출하는 성과를 맺게 된 첫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 기뻐 밤새 울었다는 일화나, 해외 파견가는 과학자들에게 `기술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특히 원전기술 자립을 이룰 수 있던 배경으로 무엇보다 과학자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었던 풍토를 꼽을 정도로 과학자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이 높은 인물이다.

◇한국 표준형 원전개발 성공=1980년대 초까지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기술은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난 1987년 영광 원전 3, 4호기 건설사업에 착수하면서 국내 원자력 관련 기관의 주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기술자립을 시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영광 3, 4호기 내 원자로 계통설계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을 추진했다. 8년 동안 1000억 여원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에서 외국 원자력회사와 공동설계로 사업수행하는 방식으로 설계 기술을 획득했고 훈련비와 시간 등 많은 자원을 절약하면서 실제 원자로 계통설계에 성공하는 결실을 거뒀다. 초기에는 우리 기술진 120명이 미국의 회사에 파견해 공동설계과정을 거쳤고 이후 기술자와 설계센터를 원자력연구소로 이전하고 당초 계획대로 1996년 원자력발전소를 준공했다. 당시 우리는 1000 ㎿ 급 가압경수로의 국산화율을 95%까지 끌어올리며 기술자립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영광 3, 4호기는 후일 한국형 경수로의 모델발전소로 공인받았다.

◇중수로용 핵연료 국산화·경수로 핵연료 기술자립=그는 1982년 대덕공학센터장으로 부임한 직후 중수로에 쓰이는 핵연료를 국산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캐나다는 6000억 원을 투입해 핵연료를 개발했는데 우리는 1986년 양산준비를 마치기까지 90억 여원의 예산만으로 중수로용 핵연료를 개발하는데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중수로 핵연료 개발 초기 캐나다 원자력공사는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120억 원을 요구했지만 독자개발키로 해 외화를 절감한 일은 우리 원자력 기술자립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소 내 1987년 연 100t 규모의 핵연료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1983년에는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에 착수했다. 당시 국내 원전은 중수로 1기, 경수로 8기 등 총 9기가 운영되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공동설계 개념을 도입해 기술훈련비와 기술인력을 크게 절감하고도 3년 만에 기술개발을 완료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렇게 개발기간을 3년 앞당긴 1989년 말 최초로 국산 경수로 핵연료 생산에 성공해 국가에너지자립의 기반을 다시 한 번 다졌다.

◇연구용원자로 `하나로` 건립 주역=1980년대 초 `TRIGA Mark Ⅰ·Ⅱ(트리가 마크 1, 2)`가 노후 되면서 그는 원전 기술 국산화와 응용분야 연구를 위한 연구용 원자로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결국 다목적연구로 건설 타당성 조사와 평가를 시작으로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건립하는데 성공한다. 열출력 30 ㎿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는 재료시험부터 핵연료 연소시험,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까지 기초연구는 물론 산업체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나로에서 생산된 방사성동위원소 `I-131`, `Tc-99m`, `Mo-99` 등은 의료계와 산업계에 공급돼 각종 항암치료제 개발에 활용되는 등 의료기술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오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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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12일 원전 설계기술 자립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 한국원자력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한 故 한필순 소장(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86년 12월 12일 원전 설계기술 자립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 한국원자력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한 故 한필순 소장(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오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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