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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보시행보살행” 개태사 양산 주지스님 전하는 말

2015-01-02기사 편집 2015-01-02 06: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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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개태사 양산 주지스님

첨부사진1양산 스님은 요즘 세상에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며 "세상을 어찌 혼자 살아가겠는가!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있는가?"라고 물었다. 빈운용 기자

충남 논산 개태사 주지 양산스님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다. 천호산 자락 한 모퉁이 사찰에 있지만 정치나 사회 현상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뜻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햇빛은 환하지만 찬바람이 세차게 부는 세밑 어느 날 그를 만났다. "얘기는 천천히 나누고 차부터 마시자"며 작설차를 권했다.



-날씨가 추운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중이 뭐 할 일이 있나. 주지(住持)는 말 그대로 절에 머물러 있는 게 일이다. 몇 년이든 수십 년이든 여기서 있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게 주지다. 수행을 하고 설법도 하고, 틈이 나면 걷고 차를 마신다. 요즘 눈이 자주 와서 절 식구들과 눈을 치우는 것도 일이고 운동이다. 가만 있으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진다."

-차 맛이 좋다.

"차에는 희로애락 모든 게 들어있다. 늘 마시고 음미한다. 차를 마시는 것은 선방에서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생각과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진다. 차의 빛깔과 향기, 맛, 따뜻함도 좋고 찻물이 끓는 소리도 들을 만하다. 옛 스님들은 찻물 끓는 소리가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스치는 소리와 같다며 송풍회우(松風繪雨)라고 불렀다. 절간에서 조용히 홀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어디 비길 데 있겠는가?"

-입구에 종루를 짓고 있다. 중창불사 진행 상황은?

"불자 한 분이 도움을 줘 종루를 짓는 중이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936년 후백제군의 항복을 받아 3국을 통일한 뒤 세운 전승기념 국찰(國刹)이다. 고려 때 내내 3000명이 거주할 정도로 흥성했으나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폐사됐다가 근세에 되살아났다. 일제시대 이후 중건한 탓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다. 사역(寺域)도 더 넓혀야 하고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도 지어야 한다. 대웅전이 없어 현재 극락보전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신도들과 학생들이 와서 머물며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는 설법전도 지을 계획이다. 옛 절터는 현재 발굴이 연차적으로 진행 중인데 조속히 발굴을 마치고 정비하도록 힘쓸 것이다."

-지난해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일이 참 많았다. 세월호 참사, 군부대 폭력, 총리후보 낙마 등 세상이 온통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는데….

"어린 학생들이 세상을 뜬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불생불멸하는 곳에서 평안하게 지내길 기원한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부정과 비리, 의혹이 줄을 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대다수 중생들은 선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일부 이기주의자, 특권만 누리고 책임의식이 없는 자들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면 어떻게 세월호 참사나 군부대 폭력이 일어났겠는가? 청와대 문건 유출이나 항공기 땅콩 회항사건도 나만 생각한 탓이다. 나만 잘되면, 나만 이익이 되면 남이야 어찌 되건 상관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세상을 어찌 혼자 살아가겠는가? 쌀 한 톨, 물 한 모금도 남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있나."

-현대인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고 극단적이다. 생각해보라. 공부나 사업 매사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조직과 무관하게 홀로 이뤄지는 게 있는가? 때로 바쁘게 나아가야 하지만 천천히 쉬어갈 때도 있어야 하고, 나 혼자 노력하지만 남도 살피고 함께 가야 매사가 제대로 이뤄진다. 불가에 묘계환중(妙契環中)이란 말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도 있고, 홀로 가지만 전체를 봐야 할 때도 있다. 세상은 유(有)가 무(無)가 되고 무(無)가 유(有)가 되는 끝없는 인연의 원(圓)으로 이어진다. 내가 소중하듯 남들도 소중하다. 탐욕과 이익에 앞서 남도 배려하고 이해·공존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잘 될 수 없다."

-요즘 종교가 사회를 맑게 하고 영혼을 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하나?

"부처님은 사생의 자비로운 아비 즉 사생자부(四生慈父)이시다. 사생(四生)은 태란습화(胎卵濕化)라 하여 태생은 태에서 나온 생명, 난생은 알에서 나온 생명, 습생은 습기에서 나온 생명, 화생은 변화하여 나온 생명을 말한다. 하찮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이 있다. 하물며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께 귀의하여 바르게 살고, 바르게 생각하며, 바른 마음으로 수행하면 부처가 될 것이다. 왜 증오하고 미워하고 속이고 악한 마음을 갖는가? 남을 존중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 보시행(布施行) 보살행(菩薩行)해야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남에게 베풀지 않고 남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풍족해지고 사회가 평안해질 수 있겠는가."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해 불만과 실망이 많은 듯한데….

"정치인과 이 나라 지도자도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게 문제다. 여당도 야당도 나만 생각하고 상대방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과 지신들이 소속된 정당의 이익과 입장만 따진다. 책임의식이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시류에 영합하여 이리 저리 흘러다니며 도대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온갖 특권은 다 챙기고 누리면서 거기에 걸맞게 처신하지 않는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사회와 나라가 병들고 있다.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을 지도자들이 다 까먹고 있다. 정답은 하나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오로지 백성들을 편안하고 배부르게 하는 쪽으로 가면 된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에 앞장섰다. 남북한 교류가 전면 중단됐는데….

"2000년부터 평양을 방문, 조선불교도연맹과 합의를 이끌어내 신계사 복원에 일조했다. 요즘 불교계는 물론 문화·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의 교류가 막혀 유감스럽다. 민간 교류도 좋지만 책임 있는 남북한 당국자가 만나 큰 길을 터야 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 북한은 아주 까다롭다. 교류와 협력은 시작하되 크고 작은 일로 중단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기초를 다져놓고 가기 바란다. 우리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고 북한도 결자해지 차원에서 재발방지에 대한 성의를 보이면 될 것이다."

-정부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사람을 잘 골라 써야 한다. 내 사람이나 내 편이 아니라 능력과 비전,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널리 구해야 한다. 대통령 두 번 하는 것 아니다. 진실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사람부터 제대로 쓰면 얽힌 정국이 풀리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새해를 맞아 지역민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달라.

"우리 국민들은 슬기롭고 열정적이고 능력도 빼어나다.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열심히 일해 놀랄 만한 발전을 이뤘다. 자원도 없고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고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미래가 올 것이다. 상생하고 화합하고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자." 대담=김재근 취재1부장(데스크)



양산 스님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1947년생이며 11살 때 다솔사로 입산, 1963년 경북 고운사 원광스님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오래 일했으며 종보국장, 사회국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등을 지냈고 월간 불교사상사 사장으로도 일했다. 성불사 주지, 마곡사 및 보광사 주지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일본 및 중국 불교계와 교류에도 힘썼다.

2000년부터 평양을 방문, 조선불교도연맹과 수차례 협상 끝에 금강산 신계사 복원을 성공시켰다. 종단 핵심으로 오래 일한 덕분에 불교계는 물론 정계 재계 법조계 예술계 인맥이 두텁고 역대 정권 수뇌부와도 상당한 교감을 나눴다. 1998년 지인의 소개로 개태사와 인연을 맺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08년 개태사를 조계종으로 등록한 뒤 중창불사를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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