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라이프 - 대전 '문충사 지킴이' 송영문씨

 한옥 한켠에 마련된 업무공간인 '열학당'에서 송씨가 옛 서책을 꺼내 읽는 모습.
한옥 한켠에 마련된 업무공간인 '열학당'에서 송씨가 옛 서책을 꺼내 읽는 모습.
푸른 잔디밭 너머로 촘촘히 기와를 올린 한옥이 고즈넉한 자태로 시선을 끈다. 담장 안팎으로 막 잎에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한옥의 기품을 살린다. 대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너른 마당과 텃밭, 그리고 살포시 열린 목재 문 사이로 속살을 내비치는 동·서재가 방문객을 반긴다. 방문을 열고 객을 반기는 노신사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대전 동구 용운동에 자리잡은 문충사(文忠祠)를 지키는 송영문(72)씨가 한옥 생활을 시작한 것은 10년 남짓. 유학자 송병선(1836-1905) 선생의 효손(4대손)이자 우암 송시열 선생의 13대 손인 그는 2003년 회사를 퇴직한 후 이곳으로 돌아왔다. 문충사를 직접 관리하며 수시로 참배를 오는 방문객을 직접 맞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본래 문충사는 유학자 송병선 선생과 그의 동생 송병순(1839-1912) 선생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사우다. 형 송병선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처단과 국권회복을 바라는 상소문을 올린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 선생의 죽음을 안 고종은 그에게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추모 사당을 건립하도록 했다. 동생 송병순 선생은 7년 뒤 한일합방이 결정되며 나라가 망하자 형의 뒤를 따랐다. 문충사는 1908년 충북 영동에 처음 세워졌지만 1966년 고향 근처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지내는데 그 때마다 두 형제의 제자였던 유림의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 곳을 찾는다.

문충사가 현재 터에 지어진지는 50년이 다 돼 가지만 송영문 씨의 생활공간인 동·서재는 4-6년 전에 지어졌다. 부인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은 항상 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의 '상덕당', 그가 서예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업무공간은 배움으로써 즐거운 집이라는 의미의 '열학당'이라 이름 붙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강당 '명정재'는 밝고 바른 집이라는 의미다. 명정재 안에 들어서면 수십 년간 유림들이 모여 지식을 나누고 정을 주고 받던 공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벽 곳곳에는 송 씨가 붓글씨로 직접 쓴 글귀들이 붙어있다. 강당 한 켠 오래된 책꽂이에서 그 동안 문충사를 방문한 이들을 꼼꼼히 기록한 서책을 꺼내드는 송 씨의 얼굴에서 자부심을 엿 볼 수 있다.

집안 곳곳에 자리잡은 텃밭에 배추, 무, 파 등 이파리가 파란 채소 재배가 한창이다. 공간이 생길 때마다 송 씨 부부가 심은 채소만 20여 종이다. 살구, 석류, 모과, 대추, 밤, 감 등 과수 나무도 15종에 달한다. 실하게 여문 대추 한 움큼을 쥐여주며 송 씨는 말한다.

"내 어릴 적에는 다 초가집이고 한옥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파트에도 살아봤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은 한옥의 삶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이 건강과 명예, 돈을 추구하며 사는데 그 중 최고가 건강이랍니다. 한옥은 목재 건물이잖아요. 우리가 산에 가면 기분이 좋고 상쾌해지는 것처럼 목재로 지은 한옥에 살면 자연과 한층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옥에서 생활하며 항상 햇볕을 많이 받고 땅을 밟고 다니면서 건강에 가까워지는 셈이지요."

목재 건물인 만큼 관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나무가 썩지 않도록 수시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문마다 발라져 있는 한지를 매년 교체해야 하는 것도 적잖은 품이 든다. 한지문이 집안에만 30개가 넘는데 한지를 교체하려면 장정 10명이 달라붙어도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다행히 문충사가 대전시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어려움을 해소하고 있다. 그 전에는 송 씨 혼자 여력이 닿는 대로 한지를 바르곤 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한옥 생활이 아파트보다 불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나름의 즐거움 찾는다면 이곳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지요. 방학 때마다 인근 지역의 아이들이 찾아와 한문을 가르칩니다. 처음 경험하는 한옥이라 어색할 법 한데도 아이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쉬는 시간마다 마당이나 대문 밖 잔디밭에서 뛰어놀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근한 공간이 바로 한옥입니다."

그는 한옥에서의 삶을 옛 선비의 삶에 비유한다.

"아내도 땅과 가까운 곳에서 채소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옛날 선비들이 학문만 한 것은 아닙니다. 농사를 짓고 채소를 가꾸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지요. 한옥에서의 삶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우리 부부가 먹을 만큼만 먹거리를 키우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한옥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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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암 송시열 선생의 13대손인 '대전 문충사 지킴이' 송영문씨는 한옥에서의 삶을 자연을 벗삼으며 마음을 정진하고자 했던 옛 선비의 삶에 비유한다. 송씨가 문충사 대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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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선생의 13대손인 '대전 문충사 지킴이' 송영문씨는 한옥에서의 삶을 자연을 벗삼으며 마음을 정진하고자 했던 옛 선비의 삶에 비유한다. 송씨가 문충사 대문 앞에서 포즈를 취하 고 있다. 김예지 기자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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