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부석사 불상 '귀환' 2년-日 대마도 관음사 르뽀

 신라시대 제작된 동조여래입상이 보관돼 있던 일본 대마도 해신신사 모습(왼쪽).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오른쪽은 오래도록 관리가 안 돼 거미줄(위)이 그대로 방치돼 있고 폐타이어와 낡은 기와가 놓여져있는 관음사 모습.    최신웅 기자
신라시대 제작된 동조여래입상이 보관돼 있던 일본 대마도 해신신사 모습(왼쪽).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오른쪽은 오래도록 관리가 안 돼 거미줄(위)이 그대로 방치돼 있고 폐타이어와 낡은 기와가 놓여져있는 관음사 모습. 최신웅 기자
'비운의 문화재'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보관돼 있던 일본 대마도의 관음사는 마치 '폐가'를 연상케 했다.

관음사는 무인 사찰로,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사찰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지 의심스러웠다.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었는지, 처마에는 거미줄이 자리를 틀고 있고 사찰 뒤편에는 폐타이어와 기와 조각이 쌓여 있었다. 제작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관음사'라는 현판과 현지 일본인의 설명이 없었다면 사찰로 식별하기도 쉽지 않았다.

불상의 환수-반환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뜨거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지 주민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관음사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한 일본인 부부는 "관음사는 무인사찰로 사찰의 기능은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이 곳에 그렇게 중요한 문화재가 있는지 사실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 우익 언론이 '훔쳐간 불상'을 돌려주지 않는 한국의 모습을 상식과 법치가 통하지 않는 전형적 사례로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대마도 주민들은 이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1330년 서산 부석사에 봉안된 뒤 알 수 없는 경위로 대마도로 건너갔고 이후 수백년이나 타향에서 고독하게 지내야 했던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의 고난의 세월을 생각해서인지 이번 답사에 나선 일행들은 관음사를 돌아보며 탄식을 쏟아냈다. 불상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지 못하고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는 사찰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고된 세월을 보내야 했던 불상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 했다. 두 번이나 대한해협을 건너야 했던 비운의 문화재가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신라시대 제작된 동조여래입상이 보관돼 있던 대마도의 해신(가이진)신사도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일본의 무관심은 두 사찰의 관리 상태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관음사와 해신신사는 도난 당시와 비교할 때 바뀐 모습이 전혀 없어 오히려 답사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관리인도 없이 하루 종일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고 잘못된 내용이 명시된 안내판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음 달이면 불상들이 세간의 조명을 받은 지 꼬박 2년이 된다. 하지만 불상의 운명은 아직 '물음표'다. 불상은 '복장 조성문(불상을 만든 유래를 적어 불상 안에 보관한 문서)'이 발견되고 왜구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반환 불가'의 여론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언제 그런 적이 있나 싶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다만 최근에 검찰의 요청에 따라 불상 2점의 일본 반출 경위를 밝히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조사위 구성의 배경에 대해 학계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려는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상 반환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한마디로 일본에 의한 약탈 증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이는 일본 측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대마도 현지에서 목도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의외였다. 대마도 주민들은 불상의 반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관음사 등의 사찰에 대한 관리도 전혀 되고 있지 않아 일본 측의 문화재 관리의 또 다른 이면을 보는 듯 했다.

답사에 동행한 김문길 한일문제연구소장은 "정작 현장에 와보니 일본은 관심도 없고 불상을 돌려줘야 한다는 증거도 내놓고 있지 않다"며 "혼이 담긴 문화재를 돌려줘야 한다는 사람들과 상대하기 위해 이렇게 약탈 증거를 찾으러 발 벗고 노력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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