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내 순례길 명소 - 구 합덕성당 뒤 둑길

 합덕성당 옆쪽에 위치한 조선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 기념상.
합덕성당 옆쪽에 위치한 조선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 기념상.
구 합덕성당 뒤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알려진 '합덕제'가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연꽃에 덮여있는 이 합덕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둑길을 따라가면 신리성지가 자리잡고 있는 '거더리'에 이른다. 천주교 역사에 있어 이 길은 단순한 길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참 사제의 삶을 온몸으로 실천한 한 순교성인의 마지막 발자취가 스며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신부의 이름은 프랑스에서 낯선 조선으로 온 오매트르 오(Aumaitre, Pierre 吳 베드로) 신부다.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었던 안토니오 다블뤼(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안토니오) 주교는 신리에 위치한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안 주교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찾아드는 교우들에게 성사를 베풀고 신앙 진리를 가르치는 한편,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초창기의 한글 교리서 저술과 간행, 조선교회의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 정리하여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는 일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1866년부터 시작된 병인대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신리 지역 교우촌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교우들을 살리기 위해 조선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신부들이 먼저 자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당시 수원 근처 샘골에서 전교하고 있던 오메트르 신부는 다블뤼 주교의 생각에 동의하고 굳이 체포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스스로 순교의 길을 선택, 이 둑길을 따라 신리에 도착해 다블뤼 주교와 함께 체포된 후 루가 위앵(Huin, Martin Luc 閔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신자와 함께 순교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고작 서른이었다.

오매트르 신부는 체포된 후 문초를 당하고 고문을 받았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앙굴렘(Angouleme) 교구에 있는 에젝(Aizecq)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던 그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과 사제가 될 실력이 아니라는 주위의 편견을 무릅쓰고 사제가 된 후 조선이라는 척박한 신앙의 땅에서 목숨을 통해 신앙의 뿌리를 내린 참 사제였던 것이다.

이런 순교성인의 뜻을 가슴에 새기면서 길게 이어진 둑길을 걷는 것도 버그내 순례길 체험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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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리성지 성당. 예수를 형상화한 조형
물이 눈에 띈다.
신리성지 성당. 예수를 형상화한 조형 물이 눈에 띈다.
 김동겸 신리성지 신부가 다블뤼 주교의 일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동겸 신리성지 신부가 다블뤼 주교의 일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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