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여행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걷기다(It is not talking but walking that will bring us to heaven)." - 매튜 헨리(Matthew Henry)

18세기 가장 위대한 성경 주석가로 불리는 매튜 헨리는 위와 같은 명언을 남겼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양쪽 다리를 번갈아 떼어 내디디며 몸을 옮겨 나아가다'라는 사전적 정의로 설명할 수만은 없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천천히 사색에 잠기며 걸을 때 비로소 개인의 창조성은 발현되기 일쑤며 연인, 가족, 친구 사이에 불신과 반목의 벽이 공고히 가로막고 있다면 둘이 한 길을 그저 말 없이 걷는 것 만으로도 그 벽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들에게 걷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산티아고'라는 순례길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지역인 생 장 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로 완주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이 험난한 길에 '순례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유구한 종교적 전통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원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야고보의 무덤까지 향하는 성지순례 코스였다. 노정을 따라 빈번하게 등장하는 옛 성당과 마녀사냥의 화형대, 십자군 전쟁의 흔적에서도 그 기원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오랜 옛날, 순례자들은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긴 여정을 버텼다.

하지만 꼭 산티아고에만 순례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 않는 각 종교별 순례길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순교자의 피로 이 땅 위에 신앙의 뿌리를 굳건히 내린 천주교의 경우에는 초기 천주교 박해 역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충청지역에 순교 성지를 잇는 순례길들이 여럿 조성돼 있다.

현재 각 지자체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이 순례길을 개발하려는 사업에 한창이다. 천주교 뿐만이 아니다. 불교와 기독교, 천도교 등 각 종파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아니면 그 신념을 되새기기 위한 순례길들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종교의 공통 분모인 사랑과 자비, 그리고 나눔과 희생을 느낄 수 있는 순례길을 천천히 걷는 것도 다가온 휴가철에 좋은 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프랑스와 스페인을 잇는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가까운 우리 지역에 위치한 순례길을 걸으며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아는가? 그 길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 할 지. 최신웅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