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 (14) 괴산 연풍순교성지·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괴산 연풍순교성지와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은 순교자들의 불굴의 신앙정신이 서려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사진은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전경.   오인근 기자
괴산 연풍순교성지와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은 순교자들의 불굴의 신앙정신이 서려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사진은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전경. 오인근 기자
◇연풍순교성지=충북 괴산군 연풍면 중앙로 홍문 2길 14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해박해 이후 은거해 신앙을 지켜가던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신유박해 때 처형당한 자리를 성역화한 곳이다. 박해를 피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던 길목이었고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였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돼 순교되기도 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도 이곳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고 골짜기에 숨어 살던 교우들을 방문해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다. 최양업 신부는 12년간 이곳을 넘나들며 신앙을 전파하다 지척인 문경에서 선종했고 칼래 신부는 우연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엽전이 든 전대 끈이 풀러지면서 포졸들이 엽전을 주우려 한눈파는 사이 도망쳐 체포위기를 면했으며 페롱(권 스타니슬라오) 신부는 상복을 입고 상주로 위장하고 다녔다는 일화를 남긴 천주교신자들에겐 거룩한 땅 이다.

이 곳의 성역화 사업은 1963년 천주교회가 연풍공소 예배소로 사용하기 위해 연풍향청 건물을 구입한 뒤 정리 작업을 하면서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 3개가 발견되고 1968년 한국천주교 103성인(聖人)에 속하는 황석두(루가)의 고향이 연풍으로 밝혀진 뒤 1982년 천묘되면서 본격화 됐다.

연풍향청은 천주교 박해때 교우들을 체포 신문하고, 직접 사형에 처한 곳으로 일제때 일본 헌병대 및 주재소로, 해방 후 연풍지서로 사용돼 왔다.

황석두는 병인박해때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가 체포되자 자수 했으며, 배론 교우촌 회장으로 활동하다 교우들의 피해를 걱정하여 자수한 장주기(요셉)과 함께 서울로 압송된 후 보령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시신은 갈매못에서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삽티를 거쳐 고향 연풍 병방골로 이장됐다 1982년 이곳으로 천묘되었고 현재까지 그의 입상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성당건립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성지 내에는 연풍향청 건물과 높이 8.5m의 십자가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황석두의 입상과 묘가 있고 병인박해 당시 신자들의 목에 밧줄 올가미를 씌우고 돌구멍에 머리를 넣게 한 다음 반대편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죽이던 형구돌, 갈매못 성지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요셉, 황석두 루가 등의 모습을 형상화한 다섯 성인상과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 동상도 서 있다.

성인상을 받들고 있는 반석은 다섯 성인이 사형선고를 받고 갈매못으로 끌려가던 중 다블뤼 주교가 교우와 포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마지막 강론을 했다는 돌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하느님의 종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시노드 후속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천주교 청주교구의 도보 성지 순례코스 종착점이자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 고해성사, 묵주의 기도 5단 등 조건을 충족한 신도들에게 전대사를 수여할 충북지역 7곳 지정 순례지에 포함됐다.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괴성당 이라고도 부른다. 1896년 설립돼 약 12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충북에서 첫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문맹 퇴치를 위해 매괴학교를 설립,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매괴(Rosario·로사리오)는 장미·염주를 뜻하는 한자어로 천주교회에서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구슬을 꿰어 만든 묵주를 가리킨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매괴성당은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다

이 성당은 초대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1869-1947) 신부가 충주목사 민응식의 저택을 사들여 건립했다고 한다. 민응식은 명성황후 민비의 육촌오빠이며 이 저택은 임오군란때 명성황후 피신처로 제공되기도 해 역사적인 사건을 간직한 땅에 지어 올린 성당이다.

임 가밀로 신부는 민응식 집터에 사제관 겸 소성당을 지어 사용하다 1903년 사제관과 성당을 건립했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단층 기와지붕의 목조한옥 이었고 이후 1930년 현 서양식 성당을 신축했으며 충북도 유형문화재 188호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성당은 지난 2006년 `성모 순례지`로 지정됐고 최근에는 임 가밀로 신부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루르드 성모굴을 본떠 성모동굴을 만들기로 했다.

이 성당은 역사만큼이나 일화와 유물도 많다. 민응식의 저택을 매입한 것도 그렇고 일본이 일제강점기 신사(神社)를 건립하려 했으나 여러 기상이변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패망했다고 전한다. 6·25때는 인민군이 성모상에 총을 쐈으나 7발이 관통했는데도 깨지지 않았고 망치로 깨 버리려 하자 성모상이 눈물을 흘려 훼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성당의 종탑은 높이가 약 14m로 우리나라 성당의 종탑 가운데 가장 높다. 현재 종탑에 있는 종은 벨라뎃다 종이다. 건립 당시 프랑스 루르드 제조회사에 마리아 종(대), 벨라뎃다 종(중), 데레사 종(소) 3개의 종을 주문했으며 각각 도(마리아), 레(데레사), 미(벨라뎃다) 음을 내 아름다운 종소리를 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를 녹여 무기를 만들기 위해 징발했으나 신자들이 3개 모두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마리아 종과 데레사 종은 손상을 입어 제 음을 내지 못해 현재 박물에 보관되어 있다.

3층짜리 옛 사제관은 충북 최초의 석조건물로 현재 매괴성당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2002년 개관했으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예수성심기, 성모성심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성체거동행사에 사용하는 일산기를 비롯 금제의, 금영대, 성광, 촛대, 깝바, 미사도구, 십자고상 등 우리나라 천주교 발자취가 담겨있는 각종 유물들도 볼 수 있다. 괴산=오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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