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만년동 구르메

한식의 변신은 무죄? 서양 코스 요리를 방불케 하는 '퓨전 한식'을 표방하며 역발상으로 한식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는 곳. 바로 대전 서구 만년동에 위치한 '구르메'다. 구르메는 불어로 '미식가의 모임'이라는 뜻. 이름에 걸맞게 이 집 퓨전한식 매력에 푹 빠진 식객들이 점심만 되면 구름처럼 몰려들며 방마다 미식가 모임을 자처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상견례 명소로 애용되며 선남선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집 대표 코스 메뉴인 A코스를 주문하니 예술같은 음식들이 바로바로 손님상에 오른다. 상 위에 하나하나 자리잡는 요리를 넌지시 바라보니 마치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새우 샐러드'는 새우에 오렌지 껍질과 발사믹소스를 가미했다. 오동통한 식감의 새우와 상큼한 오렌지향에 아삭아삭 채소의 맛이 어우러져 식욕을 한껏 살려준다. 한국식 샌드위치 '증편 겨자채 샌드위치'도 있다. 일명 술떡이라고 불리우는 '증편'을 앙증맞은 크기로 잘라 계란 등 재료로 속을 채운 뒤 부추 띠로 정갈하게 마무리한다. 보기만에도 예술이 따로 없을 정도. 화려하면서도 결코 쉽사리 뽐을 내려하지 않는 한국식 절제미가 돋보인다. 한입 먹어보니 떡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씹을수록 달콤한 맛의 증편은 계란 속재료의 담백한 맛과 어울려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생선회'도 걸작 중 걸작이다. 로즈 잎에 딸기와 광어회, 새싹 채소를 차례로 토핑한 서양식 스타일의 요리다. 향긋한 새싹 속으로 바다의 맛이 숨어들었다고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을 즈음 아삭한 채소와 부드러운 회의 식감의 조화가 혀끝을 간지럽힌다.

'흑임자 묵청포'는 이 집에서 직접 만든 흑임자 청포묵 위에 숙주, 미나리, 홍피망, 청피망이 수북이 올려져 나온다. 상대적으로 심심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의 청포묵과 짭조름하면서도 아삭한 숙주 등 채소의 궁합이 일품. 극을 달리는 두 가지의 맛이 서로 닮아간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훈제 오리구이와 숙주냉채'는 오리가 군내도 전혀 없이 상큼함 속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채소와 곁들여 그냥 한 젓가락 입에 가져갔을 뿐인데 마치 쌈을 싸먹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 채소 '춘근피'를 잘게 썰어 튀겨내 군데군데 뿌려낸다. 오리고기 사이로 가끔 씹히는 춘근피 튀김은 고소한 맛이 그만. 아기자기 먹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밖에 해파리냉채, 한방보쌈과 홍어삼합, 떡갈비, 장어강정, 장뇌삼과 마구이도 보는 이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이주희(60) 대표는 "단순히 맛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정갈하게 만든 음식들을 먹기 좋게 최적의 위치에 배치해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며 "맛과 시각의 조화로움을 통해 여유로운 식사 분위기를 제공하고 아울러 손님들이 '건강'까지 드시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식, 일식, 양식, 한식을 모두 섭렵한 요리 연구가다. 폐백 이바지 음식을 만들고 연구하며 내공을 쌓아갔다. 명절음식에 관한 방송 특강도 잇따랐다. 이 대표는 "시대 흐름에 따라 한식도 변화를 꾀하며 대중들의 감각을 맞춰주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수백가지 음식 레시피가 적힌 노트가 보물이다. '웰빙'을 조리하는 명품 퓨전요리를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룸은 4인실부터 20인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모두 200명이 수용 가능하다. 코스요리는 1만원대부터 3만원대, 5만원대, 7만원대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연지정식 1만1000원 △곤지정식 1만6000원 △A코스 3만7000원 ☎042(472)0776 (※서구 만년동 377번지)

글·사진 이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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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메의 정갈한 음식들은 마치 서양 코스요리를 방불케 하며 예술과 같은 시각적인 미와 깔끔한 맛이 조화돼 식객들의 입맛을 붙잡고 있다. 사진은 구르메 A코스 요리
구르메의 정갈한 음식들은 마치 서양 코스요리를 방불케 하며 예술과 같은 시각적인 미와 깔끔한 맛이 조화돼 식객들의 입맛을 붙잡고 있다. 사진은 구르메 A코스 요리

이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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