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괴정동 옛집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요즘 같은 때면 왠지 모르게 기분도 싱숭생숭하다. 추위가 가시며 봄햇살이 돋아날 때면 겨우내 잠가두었던 외투를 풀어내듯 마음의 문도 살짝 열어두고 싶다. 오래두고 사귄 벗과 함께 옛 음식을 즐기며 추억을 나누고 픈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기 마련이다. 갓 부쳐낸 따끈따끈한 부침과 함께 막걸리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꼭 친구사이가 아니더라도 음식 하나로 지인과 혹은 시장상인과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곳. 대전 서구 괴정동 한민시장 인근에 위치한 `옛집`은 단골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숨은 맛집`이다.

가게로 들어가면 곳곳에 정겨움이 서려 있고 고소한 음식향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게 영락없는 시골 장터 옛 가게 풍경과 닮아있다.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정다운 이야기가 오갔으며, 여유가 있어 행복한 삶의 소박함을 나누었을까 상상하던 차에 인상좋은 주인 내외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말을 건넨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시골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정(情)으로 배가 부를 정도라면 과장일까.

이 집의 대표메뉴인 녹두빈대떡과 해물파전은 주문 즉시 부쳐져 나온다. 오랜 노하우를 지닌 주인장의 부침개 솜씨로 식객들의 입맛을 끊임없이 유혹하니 조리대는 기름 마를 날이 없이 분주하며 고소한 냄새가 콧잔등을 바삐 간지럽힌다. 밀려드는 주문에 하루에 100판 정도는 거뜬히 넘길 정도란다. 반죽은 매일 아침에 가게 열기전 준비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물파전은 반죽을 기름에 두른후 대파 등 채소를 올리고 그 위에 반죽을 다시 두른다. 앞뒤 반죽이 채소의 숨이 죽지 않도록 막아주고 쉽사리 타지 않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부침의 노하우다. 이렇게 7-8분간 3번 정도 앞뒤로 고루 익혀주면 추억의 해물파전, 녹두빈대떡이 탄생하는 것. 이야기꽃을 피우다가도 어느새 군침을 다시는 손님들은 `안주`가 어서 상에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갓 부쳐나온 녹두빈대떡을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한 입 가져가니 고루 익혀낸 덕분에 바삭한 맛을 넘어 `아삭아삭`하기까지 하고, 식으면 식은대로 퍽퍽한 느낌이 없이 `부들부들`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느끼하지 않게 담백하면서도 입안 가득히 서서히 퍼지는 고소한 맛이 자꾸만 젓가락질을 하게 만든다. 해물파전 역시 질퍽함이 없이 바삭바삭한 맛이 돋보인다. 중간중간 파의 알싸한 맛과 오징어 등 해물의 담백한 맛, 부침개의 고소한 맛이 한데 어울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천연재료를 사용해 양념을 한 닭발은 단지 맵기만 한 불닭맛이 아닌 `감칠맛`나는 매운맛으로 승부한다. 비법은 친언니가 농사지은 태양초에다 청양초 등을 적절히 배합한 양념맛에 있다. 깨끗하게 손질되어 공급된 닭발은 주인장의 손을 한 번 더 거쳐 완벽하게 다듬어진다.

선짓국도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받은 우거지에 천연재료만으로 맛을 낸 육수로 조리한다. 조미료를 넣지 않아 옛날 장터 그 맛 그대로다. 선지는 씹었을 때 흐물흐물 거리지 않고 쫄깃쫄깃한 식감까지 살아있다.

서수진(57) 대표는 이북출신인 아버지와 음식맛으로 유명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두루 받아 북한식 녹두전 등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귀띔한다. `종갓집`이었던 이유로 일찍이 이런저런 향토음식을 만들게 되었다고. 서 대표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고 진심으로 만들어 대접한다면 손님들로부터 인정은 따라 온다"며 "수익보다 많이 팔고 베푸는 마음으로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녹두빈대떡 6000원 △해물파전 7000원 △닭발 小 5000원·大 1만원 △무뼈닭발 9000원 △선짓국 4000원 (※서구 괴정동 83-11번지) ☎042(320)3210 글·사진=이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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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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