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옥·형벌 연구 앞장 임재표 대전지방교청장

"우주의 기운을 담아 사람을 살린다는 선조의 깊은 교정철학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옥(獄)과 형벌에 대한 연구자가 있다. 지난달 대전지방교정청장으로 부임한 임재표(57) 청장이 그 주인공. 임 청장은 교정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1984년 이후 틈나는 시간마다 한국의 전통 옥과 형벌에 대한 연구에 매진 해왔다.

그와의 대화 첫 마디에서 옥과 형벌의 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임 청장은 "우리나라에서 옥에 대한 연구는 처음인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기자의 `감옥`이라는 표현을 두고 "우리나라 어떤 문헌을 찾아봐도 감옥이라는 말은 없고 단순히 옥이나 형옥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라며 "감옥이라는 표현은 일제시대 때 사용하기 시작한 일제의 잔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갑오경장 이전에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형을 받는 사람을 일정한 곳에 가두어 신체적 자유를 빼앗는 자유형 제도가 없었다"며 "자유형이 없이 태형, 장형, 참수형, 교형, 유배형 등의 형을 집행하기 이전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옥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부분이 우리나라 옥의 역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대로 원형(圓形)의 옥을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도 임 청장이 최초였다. 그는 "북부여 시대 때부터 한반도에서는 원형옥이 존재했다"며 "긴 역사와 수많은 변화에도 조선시대까지 원형옥의 전통은 이어졌다"고 말했다.

원형옥은 원형의 건물 안에 죄인들이 머물던 공간을 둔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가 원형옥의 형태를 찾아내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의 수 백개의 원형옥을 모조리 없애고 자기들 만의 `감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임 청장은 "1910년대 초반에 일본이 관아 건물중 하나인 원형옥을 다 허물어 버렸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통 옥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전통 옥 연구에 어려움을 겪던 임 청장에게 한줄기 빛 같은 존재 역시 일본인이 만든 한 사진첩이었다.

`조선형무소사진첩`이란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에서 발행한 사진첩이었다. 이 책에는 일본이 조선을 침탈해 전통옥을 없애고 새로 지은 자신들의 형무소를 사진을 담아 기록한 것인데 이 사진첩 한 켠에 현재 충남 공주 공산성 아래 위치한 전통옥의 사진도 3컷이 포함돼 있었다.

임 청장은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달나라를 발견한 것 같이 기뻤다"며 "당시 수원에서 살며 수도권의 고서적 서점, 도서관, 규장각 등을 다 훑고 다닌 끝에 어렵게 책을 찾아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진을 통해 뚜렷하진 않지만 형태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원형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교정공무원 첫 발을 내디딜 때 교재 등에서 한 두줄 `우리나라의 전통 옥은 원형을 띠고 있었다`는 설명을 보았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처음"이라며 "이 사진첩에 있는 이 사진이 우리나라 옥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였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전통의 원형옥은 역사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교정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임 청장의 설명이다. 또 한가지 그에게 큰 영감을 불어 넣었던 책은 조선 세종 8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전통옥의 표준설계도인 안옥도 였다.

안옥도도 온전히 복원돼 있는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그동안 연구했던 것을 종합했을 때 안옥도의 내용도 파악이 됐다고 전했다.

전통옥의 담의 높이에서부터 배수시설, 수용시설 등의 구체적인 설계도가 담긴 안옥도는 우리나라 옥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표준서였다. 또 안옥도를 통해 그가 그려본 전통옥은 민본주의적인 휼형(恤刑)정신을 담고 있었다.

그는 "안옥도의 내용을 보면 당시에도 옥 내의 습기방지를 위해 단차를 두고 추운 겨울에는 목창살에 흙을 붙여 보온·방한을 하는 등 수감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며 "그 당시 우리나라는 죄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 옥에 들어와 형을 받고 나갈 때까지 애민(愛民)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 청장은 "당시 옥은 형을 받기 전 죄인들이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옥 안에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며 "실제 당시에도 항소심제도가 있어 참형이 처해지기 전에 반드시 왕이 그 죄인이 참형에 처해질 인물인지 여부를 가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실제 조선왕조실록 세조편을 살펴보면 "상께서 오늘 복심을 진행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복심은 현재 항소심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형이 선고된 죄인을 왕이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형을 집행할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임 청장은 원형옥의 형태에서 시선을 돌려 원형옥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원형은 대대로 우주를 뜻한다"며 "옥을 원형으로 만든 데에는 우주의 기운으로 사람을 살리고자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정은 죄를 벌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고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 교정철학이라는 의미다.

임 청장은 "우주는 변화무쌍해서 우주의 능력으로 못하는 게 없다는 게 우리 조상들의 사상"이라며 "그런 변화무쌍한 능력으로 죄인들도 변화시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의미에서 옥이 우주를 의미하는 원형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원형옥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서양에도 이런 사상은 없다"며 "이런 분명한 교정교화의 목표를 가지고 수 천년 동안 원형 옥을 유지해온 조상은 없었다"고 자부했다. 이어 임 청장은 "네덜란드가 현대 교정 역사의 효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정 역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며 "우리나라의 원형옥이 교정 역사의 효시라는 것을 세계에 알려 나갈 것"이라고 향후 포부도 밝혔다. 임 청장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빛났다.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은 우리나라 교정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역사 대대로 우리나라가 그래 왔듯, `죄가 나쁜 거지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라는 정신을 실천하는 임 청장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교정제도가 변화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는 "교정공무원으로서 수감자들을 보면 `그래 그럴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한다"며 "큰 의미 담고 옥을 원형으로 만들었던 선조들처럼 현재의 교정공무원들도 그들을 우주처럼 변화시켜 다시 사회로 돌려 보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호진·사진=빈운용 기자

임재표 대전지방교정청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지난 1984년 교정간부 27기로 교정공무원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 2006년 의정부 교도소장으로 첫 기관장 업무를 수행했다. 2007년 강릉교도소장을 지냈다. 이후 법무부 교정기획과장, 수원구치소장, 안양교도소장 등을 거쳐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으로 후배 양성에도 힘써 왔다.

2012년 대구지방교정청장으로 교정청장 첫 발령을 받은 뒤 지난달 13일 대전지방교정청장으로 부임해 지역의 교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는 △조선시대 인본주의 형사제도에 관한연구(2002년 학위논문) △교정학(2002, 2005, 2007, 2009년) △영남지역 전통 옥터 조사 및 답사기록 등이 있다.

임 청장은 후배들 사이에서 강직한 선배로 존경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형벌과 옥에 대한 연구에 조예가 깊어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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