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건망증과 치매 차이

 남선우 대전선병원 뇌신경센터 신경과 부원장
남선우 대전선병원 뇌신경센터 신경과 부원장
#출근하려고 일어났는데 평소 보던 아침의 풍경이 아니다. 여긴 어디지? 어제 어떻게 된거지? 당황스럽다. 아 맞다. 어제 회식…. 2차로 옮긴 이후 기억이 안난다.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겁이 난다. 머리를 쥐어짜는 순간 회사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대리 일어났어?"

술 마신 뒤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의학 용어로 '블랙아웃(정전)'이라 불린다. 블랙아웃은 짧은 시간에 빨리 술을 마시면 발생한다. 알코올은 위와 소장에서 흡수된 뒤 혈액을 타고 간으로 들어가 최종 처리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간의 처리 용량보다 많은 알코올이 몸 안에 들어오면 알코올은 핏줄을 타고 뇌와 다른 장기로 파고든다.

특히 뇌에는 다른 신체 기관보다 많은 혈액이 공급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알코올은 뇌세포를 직접 파괴하지는 않지만, 신경세포 막을 무너뜨리며 신경세포들의 신호 전달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신경세포 간의 정보전달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여러 이상 징후가 나타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블랙아웃인데, 알코올이 대뇌의 해마를 마비시켜 단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뇌의 해마는 기억의 입력과 출력을 관장하는 부분으로, 지나친 음주로 해마가 마비되면 단기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므로 그 다음날 아무 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저장된 정보가 없으니 출력할 정보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블랙아웃 현상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기억상실증이나 건망증과는 다르다.

그러나 20-30대 젊은이라도 술 마신 뒤 블랙아웃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면 50대 이후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블랙아웃 현상이 6개월 안에 2-3회 이상 되풀이되거나 10번 술을 마시면 2-3번 이상 나타난다면 위험한 상태로 간주한다.

건망증, 왜 주부들에게 많을까.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정도에 차이가 문제가 있을 뿐이다. 특히 주부들의 경우 단순한 가사 노동의 반복, 만성 스트레스와 피로, 출산과 폐경기의 호르몬 변화 등으로 건망증 현상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병원을 찾는 주부들의 경우 아이를 하나, 둘 낳을 때마다 건망증 증세가 심해진다고 호소한다. 이것은 다 이유가 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기억장애는 관계가 있다. 폐경기 이후 여성호르몬을 투여받으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호르몬의 변화뿐만 아니라, 출산 뒤에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고, 또 폐경기 여성은 자신이 늙어간다는 불안감, 여성성 상실에 대한 스트레스 등 중압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심리적인 요인들이 원인이 되어, 호르몬의 변화로 건망증이 생기는 것이다. 건망증 현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고통,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 해결하면 건망증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깜빡 증세는 단순한 건망증인가 아니면 치매 증상인가? 또 젊어서 건망증을 보이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치매로 바뀌는 것인가, 아니면 건망증은 치매와 전혀 다른 걱정할 필요 없는 증상인가?

결론부터 말해 건망증은 뇌세포의 손상에 의해 지적능력이 크게 저하되는 치매와는 다른 것이다. 뇌기능 영상사진을 찍어 봐도 치매환자의 뇌세포는 상당부분이 죽어 있는 반면 건망증은 뇌 손상이 없는 정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건망증은 단기기억 장애 혹은 뇌의 일시적 검색능력 장애로 정의할 수 있다. 시간·공간적인 맥락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인 기억현상에 차질이 생긴 것이지만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치매는 단기기억뿐 아니라 기억력 전체가 심각하게 손상됨은 물론 판단력과 언어능력, 작업능력도 현격히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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