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보령 '갈매못성지'

"그들이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한 구절이다.

한국 유일의 바닷가 순교성지. 병인박해(1866-1873) 때 이름이 전해진 다섯명의 순교자와 수 백여 명의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곳. 바로 '갈매못 성지'다. 충남의 새도청소재지인 홍성에서 국도 21호선을 따라 보령 방향으로 내달리다 보면 갈매못 성지라고 쓰인 커다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는 꼬불꼬불한 산길로 이어지고, 어느새 눈 앞에는 탁 트인 바다가 들어온다. 갈매못 성지는 충남 보령 오천항을 지나 10분 정도 해안도로를 더 들어가야 아픈 역사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갈매못 성지는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3월 30일에 성 다블뤼 안 주교, 오매르토 신부, 위앵 민 신부, 황성두, 장주기 외 500여 명이 순교한 곳이다.

숙연한 분위기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갈매못 성지 안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에서 기도와 찬양을 하며 하느님을 향해 떠난 순교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성당이 자리잡고 있고 성당에서는 다섯 성인과 수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순교터가 내려다 보인다. 순교터는 짧은 잔디로 잘 다듬어져 있었고 따뜻한 햇살이 하루종일 터를비추고 있었다.

이 곳이 순교지로 정해진 것에 대한 흥미로운 비화가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병인박해 때인 1866년 3월 7일 제 5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다블뤼 안 주교는 임명 사흘만에 황석두와 함께 수도 한양에서 체포됐다. 그러나 때마침 고종이 병을 앓게 된 데다 혼인도 한 달밖에 남지 않은 터라 "장안에 피가 흐르면 국가의 장래가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서울에서 250여 리 떨어진 갈매못을 이들의 처형지로 삼았다. 이 곳이 처형지로 선택된 이유는 당시 천주교 유입의 길목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어고 처형을 통해 천주교인에게 본보기를 보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200여명의 군인들이 둘러서 있는 가운데 지역주민들과 신자들이 순교의 현장을 지켜봤는데 성인들은 망나니의 칼날 아래에 참수됐고, 순교자들의 솟아오르는 피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짙붉게 물들여 놨다고 한다. 또 다섯 성인의 머리가 기둥 위에 걸렸을 때는 은빛 무지개 다섯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전해진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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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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