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백제 불교의 중심지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산 중턱 안국사지의 미륵삼존석불 뒤에는 고단한 백성들이 미륵세계를 염원하는 2종의 매향암각을 확인할 수 있는 배바위가 있다(사진 왼쪽). 선의 일상화와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등 한국 불교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했던 예산 수덕사 모습. 사진=당진시·예산군 제공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산 중턱 안국사지의 미륵삼존석불 뒤에는 고단한 백성들이 미륵세계를 염원하는 2종의 매향암각을 확인할 수 있는 배바위가 있다(사진 왼쪽). 선의 일상화와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등 한국 불교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했던 예산 수덕사 모습. 사진=당진시·예산군 제공
백제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다와 강을 이용할 줄 안 사람들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바다와 강을 이용해 선진문화를 적극 수용했고 창조적으로 꽃 피웠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내포는 지리적 여건상 문화의 수용과 교류, 전파의 길이 무궁무진하다. 내포가 받아들인 외국 문물 중 한반도 전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불교다. 내포를 통해 백제 불교의 역사가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포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때 백제시대 불교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제와 함께 그린 내포 역사=사통팔달 지리적 여건이 뛰어난 내포지역은 백제 불교문화의 시발점이다. 6세기 전반 전국 최초의 석불인 사면석불이 예산 화전리에 지어졌고 이를 통해 전문가들은 내포지역의 백제인들이 중국 남조 석굴사원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6세기 후반에는 태안 백화산 정상에 태안 마애삼존불을 조각했고, 7세기에는 가야산 북쪽 봉우리 상왕산 용현계곡에 서산 마애삼존불을 만들어냈다.

내포지역의 불교는 삼국통일 이후 더욱 깊이 자리를 잡는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 중앙정부는 내포지역에 남아있던 반 신라적인 정서를 수습하기 위해 서산 마애삼존불의 본사로 알려진 보원사를 화엄 종찰로 크게 중창하고, 왕권을 내세우며 대중을 교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반 신라적 성향이 짙던 내포지역 백성들은 통일신라 왕조의 주 이념이었던 화엄종이 아닌 '신사조운동'을 일으켰다. 이 때 새로운 이념으로 새 사회를 건설한다는 뜻을 품고 나타난 인물이 보조선사 체징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 선문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실질적 개산조(開山祖)라고도 꼽히는 인물이다.

내포지역의 불교 세력은 고려 왕실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불교를 국교화했던 고려 시대 태조 왕건은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는 '왕사(王師)'를 뒀는데 이 때 왕사로 활동한 인물이 바로 내포지역 출신인 이엄이다. 고려 왕실 깊숙이 뿌리 박힌 불교는 고려 중앙정부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새로운 사상을 폈던 승려 탄문은 926년 태조 왕건의 왕후 유씨가 임신을 하자 아들을 낳기 위해 기도를 해주기까지 했다. 광종 즉위 후에는 국사로도 임명됐다.

◇민중으로 파고든 불교신앙의 변화=고려 후기 오랜 전쟁과 잦은 왜구의 출현으로 민중에서는 불교신앙의 형태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상적인 복지사회를 제시하는 미륵을 믿는 신앙인 미륵신앙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 사이에서 성행했다. 미륵신앙은 위기를 극복해주고 지상에 용화세계를 만들어 구원해 주는 민중의 마음을 만지는 신앙이었다.

민중의 기둥이었던 미륵불은 길가나 밭, 야산 등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내포지역에서는 원하는 바를 바위에 새겨 비석 형태로 새기는 매향비가 눈에 띈다. 매향은 미래에 하생할 미륵불에게 공양할 침향(沈香)을 땅속에 묻어두는 행위다. 내포에는 해미매향비, 안국사지매향암각, 덕산매향비 등 수많은 매향비가 남아있다. 당시 일반 민중이 국가의 안녕과 공동체의 평안을 기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근현대사에서의 내포 불교=근현대사에서의 내포 불교는 예산의 수덕사를 중심으로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수덕사의 존재 또한 백제가 내포지역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한 대표적인 문물이다. 수덕사는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되면서 충남 일대 50여개 사찰을 관장하게 됐고 1984년에는 총림으로 승격됐다. 현재는 참선 수행과 경전, 계율을 교육하는 5대 총림으로 꼽힐 만큼 대한민국에 불교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예산 수덕사에서 배출한 유명한 승려가 경허 성우와 그의 제자 만공 월면이다. 경허 성우는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선의 일상화를 추구해 한말 선종을 중흥시킨 인물로 꼽힌다. 또 만공은 일제강점기 홍성 출신인 만해 한용운과 함께 일본 불교화에 강하게 맞서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등 민중들 사이에서 독립을 외친 본보기였다.

내포는 전국에서 징수된 세금이 서울로 수송되는 통로 및 중국과의 무역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국의 물자와 문화가 활발하게 교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포지방은 불교를 가장 먼저 받아 들이고 한반도에 정착시켰다. 이어 내포는 일본에도 불교를 전파한 중심지다. 이처럼 백제시대 내포지역에서의 불교문화는 백제의 혼이 그대로 깃든 내포정체성을 그대로 담고있다. 강보람 기자 boram@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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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산 중턱 안국사지의 미륵삼존석불 뒤에는 고단한 백성들이 미륵세계를 염원하는 2종의 매향암각을 확인할 수 있는 배바위가 있다(사진 왼쪽). 선의 일상화와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등 한국 불교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했던 예산 수덕사 모습. 사진=당진시·예산군 제공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산 중턱 안국사지의 미륵삼존석불 뒤에는 고단한 백성들이 미륵세계를 염원하는 2종의 매향암각을 확인할 수 있는 배바위가 있다(사진 왼쪽). 선의 일상화와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전파하는 등 한국 불교의 매개체 역할을 수행했던 예산 수덕사 모습. 사진=당진시·예산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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