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내포의 교육

 홍주향교.  사진=홍성군 제공
홍주향교. 사진=홍성군 제공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과 관련된 짧은 명언 하나를 남겼다. "교육은 과거의 가치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가치 창조에 있다." 그가 말했듯 교육은 미래의 가치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정확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보를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었다. 이로인해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선대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더 나은 판단을 하고, 이전보다 더 발달된 문명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사자성어인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닿아 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의 중요성은 언제나 회자돼 왔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조선시대 내포지방의 교육=조선의 건국과 함께 유학이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등장하면서 향교, 서원 등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게 된다. 조선시대 교육의 일반적 특징은 성리학의 교육이념에 입각해 교육제도가 운영됐고, 성균관, 4학, 향교 등의 관학이 교육제도의 근간을 이뤘다는 점, 학교법규나 교육규범과 같은 교육에 관한 법 규정이 정비됐고 학교교육이 과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운영됐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향교, 서원, 서당 등이 주도했다. 충남도내 향교 중 상당수가 내포 지역에 위치 해 있는데 예산의 대흥향교, 덕산향교, 당진의 당진향교, 면천향교, 홍성의 홍주향교, 결성향교 등이 대표적이며 교관으로 교수, 훈도 등이 배치돼 교육을 담당했다. 향교는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 서얼도 입학 할 수 있게 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생원, 진사 시험을 볼 수 있었고 평민 출신 학생들 중에는 역관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중기에 들어서면서 지방 교육은 향교중심에서 서원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설립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서원이 세워졌으며 내포지방에도 서산의 성암서원, 송곡서원 홍성의 노은서원, 용계서원, 혜학서원 등이 세워졌다. 특히 노은서원은 홍북면 노은리에 세워졌으며 사육신 중 하나인 성삼문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서원은 조선중기 이후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며 세를 확장해 갔으나 갖은 폐단으로 인해 1864년에 대원군(大院君)에 의해 47곳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됐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하의 내포 교육=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의 당면과제는 국권회복을 위한 문제로 집결됐다. 애국계몽운동은 우리민족의 힘과 실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교육과 경제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 언론, 종교, 군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개됐다. 이렇게 시작된 계몽운동으로 인해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자발적으로 세운학교 수는 3000여 개교에 이른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교육을 받아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아래 고등 전문교육을 배제한 식민지 통치에 필요한 초등교육기관과 기술교육기관 확충에 주력해 조선인들의 교육열을 꺾었지만 조선인들의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1907년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호명학교'등을 중심으로 내포 지역 곳곳에서 근대식 학교가 등장했다. 김좌진은 충청지방의 신학문 증진과 민족 교육 진흥을 위해 기호흥학회홍성지회를 창립하고 사재를 들여 근대교육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자강운동단체의 전국조직에 편승해 이세영과 이상린을 중심으로 대한협회홍성지회를 설립해 제국주의 침략에서 민족보존을 목표로 1908년 성명학교를 세웠다. 설립 구성원은 유생이었으나 임원조직은 근대 학교의 체제를 따랐다. 이 밖에도 홍동에 동명학교, 장곡에 홍명학교, 결성에 보광학교가 세워지는 등 민간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교육운동이 내포 일대를 강타했다. 나라를 구하려는 깨어있는 선지자들의 주도 아래 교육을 통해 구국운동, 항일항쟁이 이어지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됐다.

하지만 민족계 사학은 1908년 '사립학교령'의 시작으로 일제의 탄압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급속히 감소했는데 1910년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1973개 충남에 91개교의학교가 운영됐으나 1915년에는 이 수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내포 지역은 과거 백제에 속해 있으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워 바다 건너 멀리까지 문화를 전파해 일본 고대 문화의 결정체인 아스카문화를 꽃 피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문화는 교육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내포 정체성'으로 확립됐다. 과거를 통해 미래 가치를 창조하는 교육을 통해 1600여 년전의 정신이 각 시대에 맞게 변형, 창조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김달호 기자 daros@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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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포의 교육은 1600여년 동안 과거를 통해 미래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내포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 교육의 근거지였던 향교 중 하나인 홍성 결성향교.  사진=홍성군 제공
내포의 교육은 1600여년 동안 과거를 통해 미래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내포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 교육의 근거지였던 향교 중 하나인 홍성 결성향교. 사진=홍성군 제공

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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