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여성교육 발자취

 신사임당 초상화.
신사임당 초상화.
충남은 일찍부터 여성 교육에 눈을 뜬 선구적 고장이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율곡 이이의 제자들이 이뤄낸 기호유교의 기저에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다. 여자가 출가한 뒤에는 오직 시집 만을 위하도록 요구했던 조선의 규격화된 유교적 규범 속에서도 순수한 인간 본연의 정과 사랑을 더 중시했던 사임당의 문학과 그림, 예술은 고스란히 아들 율곡에게 이어졌고, 오늘날까지 충남의 교육에 녹아 있다.

이는 조선시대에 충남지역에서 배출된 여성 문인의 수와 작품 양이 타 지역을 압도하는 것으로 입증된다. 문집을 보유했던 여성 문인도 수두룩하다. 16세기 서천의 김임벽당(金林碧堂)·연기의 창령성씨(昌寧成氏), 16-7세기 천안의 이설봉(李雪峯), 17세기 공주의 남평조씨(南平曺氏)·홍성의 이옥재(李玉齋), 18세기 대전의 김호연재(金浩然齋)·서산의 오청취당(吳淸翠堂)·서천의 신부용당(申芙蓉堂)·조치원의 곽청창(郭晴窓), 19세기 청양의 기각(綺閣), 19-20세기 예산의 남정일헌(南貞一軒)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쟁쟁한 조선의 여류 문인의 배움의 열망은 호서(충남)지역 선비들의 어머니나 아내로서 자식과 지아비의 군자행(君子行)을 이끌어 냈고, 1870년대 개항과 함께 여성 교육의 근대화로 이어진다.

물론 조선의 쇠락과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아픔은 충남 여성의 교육의지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1908년 여성교육을 위한 최초의 제도적 기반인 '고등여학교령'이 선포됐지만 충남의 여성 교육은 1921년 대전공립 고등여학교(현 대전여중)가 설립될 때까지 암흑기나 다름없었고, 이 마저도 일본인 여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충남의 여성 교육을 궤도에 올린 사람은 이범익 충남도지사다. 이 지사는 "여성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육의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1935년 12월 첫 지방관회의가 열린 날 우가키 조선총독에게 대전에 조선인 여학교 설립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설립 허가를 얻어낸 이 지사는 군수들에게 500원에서 1000원 씩 부지매입비를 걷었고, 일주일만에 모은 6000원으로 대전시 대동에 여학교를 설립한다. 바로 1937년 개교한 대전여고다.

충남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1239개의 학교(2012년 9월 현재)가 있고, 29만 7631명의 남녀 학생이 동등하게 공부하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강보람 기자 boram@daejonilbo.com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