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음악이야기]

음악가들 중에는 많은 악처가 있지만,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 역시 악처로서 악명이 높다.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1884년 26세에 고향인 루카에서 엘비라를 처음 만났다. 그의 첫 오페라 `르 빌리`를 밀라노에서 초연한 뒤 작곡가로서 촉망받는 유망주로서 밀라노를 잠시 떠나 휴식차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 당시 엘비라는 푸치니의 옛 학우였으며, 꽤 성공한 제약업자인 나르시스코 제미냐니의 부인이었다. 제미냐니는 성악에 재능이 있던 엘비라에게 레슨을 시켜주기 위해 푸치니를 초청했지만 금발의 아름다운 얼굴과 큰 키, 그녀의 당당함에 푸치니는 사랑에 빠진다.

1886년 푸치니가 28세가 되던 해, 엘비라는 임신하였고 이를 숨길 수가 없어 루카를 떠난다. 둘 사이에서 아들 안토니오가 태어나고 두 사람의 삶은 가난했다. 푸치니의 출판업자 리코르디로부터 매월 지급받는 적은 수입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푸치니가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어가자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된다.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하면 할수록 주위엔 여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주 연애행각을 벌였다. 엘비라는 나이가 들수록 살이 찌고 이전의 아름다움을 잃어갔으며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하였다. 반면, 푸치니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세련되고 매력적인 중년의 남자가 되어갔다. 이런 그를 쫓아다니는 여자들을 보며 엘비라의 질투심은 병리학적으로 편집증의 증세까지 보이게 된다. 푸치니의 뒤를 쫓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일탐하였고 그의 편지들을 뜯어보기까지 했다. 그녀의 질투심이 극한까지 올라갔을 때 마침내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이 터지고 만다.

푸치니가 1903년 자동차 사고를 당한 뒤, 그를 간호하기 위하여 어린 소녀를 고용한다. 그 소녀가 바로 도리아 만프레디였다. 푸치니 가의 모든 하인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있했으며,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는 이후 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엘비라마저 도리아를 딸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야위고 병약했던 그 소녀는 어느새 1908년 스물한 살이 되었고 돌연 엘비라는 근거도 없이 그녀가 남편의 최근 정부임에 틀림없다는 망상에 빠진다.

결국 도리아는 해고되었지만, 엘비라의 분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거리에서 그녀를 매춘부, 암캐라며 조만간에 호수에 처넣어버리겠다고 큰소리로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도리아는 악마적인 엘비라의 학대에 못이겨 마침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독약을 마신다. 도리아의 사망 즉시 부검이 행해졌는데, 결국 그녀가 순결한 처녀로 죽었음이 판명되었다.

이상철 순수예술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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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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