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충남 4대 문화권 원류

둥글고 살이 오른 통통한 얼굴. 반원형의 눈썹 아래 살구씨 모양의 눈. 야트막하고 펑퍼짐한 도야지 코. 그 아래 펼쳐진 숨 막힐 듯한 미소.

가야산 중턱에서 본 건 백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씻겨주는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은 '두려워 말라, 모든 게 잘 될 것이니'라며 손짓했다.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충남의 정신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짓날, 해 뜨는 쪽을 바라보고 선 삼존불은 부활의 다른 이름이다.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이라며 백제를 읊었던 시인 신동엽이 본 것도 망국(亡國)이 아닌 '다시 태어남'이다. 그래서 시인은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이라고 썼다.

마애 삼존불의 미소는 천리 비단 물길, 금강(錦江)을 닮았다. 두 볼 가득 번지는 포용의 기품은 여유로우면서도 느긋한 물길을 빼 닮았다.

그렇게 백제의 미소가 금강을 만나면서 거대한 문화를 잉태했다. 강은 문화를 낳고, 옮겼다. 해상강국 백제의 명성도 강에서 비롯됐다. 금강은 충남인의 번영과 격동, 투쟁의 일기(日記)를 몇 겁(劫)의 유랑(流浪)에 담고 있다. 395.9km의 강 줄기는 시대와 정신을 애무하고, 사상과 물자를 소통했다. 물론 물길을 가로지르는 시공간에는 이 땅에 발을 디뎠던 민초들의 희로애락이 있다.

강이 낳은 문화는 지금 충남의 4대 문화권으로 성장했다.

금강문화권에서 발원한 백제문화권, 내포문화권, 기호유교문화권은 오늘을 사는 충남인은 물론 충청 전체의 정신의 원류가 됐다.

금강 유역에는 무려 565점의 지정 문화재가 있다. 전국 문화재수의 5.1%, 충남 전체로는 51.6%가 밀집해 있다.

금강은 내포(內浦)를 만나면서 충남인의 개방성과 진취적 기상을 뽐냈다.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왔던 내포문화권은 서해안 교류의 관문이자 불교문화와 천주교 등 외래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았고, 발전시킨 곳이다. 충남도청이 홍성·예산의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는 2013년이 신 충청 시대의 원년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백제의 미소는 금강을 따라 흐르면서 '선비'의 나라를 세웠다. 조선조 500년을 주름잡았던 '충남 기호유교'는 사계 김장생에서 우암 송시열, 명재 윤증으로 이어지는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함께 예학의 나라를 이끌었다.

충정과 예의, 의리를 목숨보다 중시했던 선비 정신은 대한민국의 시대 정신이기 앞 서 충남 사람의 얼굴이었다. 바로 '충청도 양반'이라는 보통 명사의 탄생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충남의 정신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론 섬세하고 온화한 금강을 닮았고, 물길이 바닷길이 되면 내포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담아냈다. 때론 가을 서리(秋霜) 같은 결의와 단호함으로 계백의 호국충절과 선비 정신의 원류가 됐고, 근세 동학 운동과 3·1 만세운동, 단재 신채호의 적극적 항일 무장 투쟁의 원동력이 됐다. 권성하 기자 nis-1@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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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마애삼존불.  대전일보 DB
서산마애삼존불. 대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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