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 공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공부(工夫)의 중국어 발음은 '쿵푸'(쿵후)라고 한다. 화려한 기술로 적을 물리치는 이소룡의 멋진 무술 쿵푸가 바로 '공부'인 것이다. 공부는 억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해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몸은 쓰지 않고 머리로만 공부를 하려고 하니, 그 멋진 쿵푸가 지겨운 공부로 전락해버리고 말게 된다. 논술은 중국식으로 쿵푸 해야 할 대상이지 대한민국 입시 제도 하에서의 공부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논술은 생각하는 힘을 키워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논리적인 체계를 갖춰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논술을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단기간에 논술공부를 끝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영어 수학은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를 시키면서 논술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속성 공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집중교육을 시키고 끊임없이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고, 수학은 일주일의 상당한 시간을 몰입하게 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고민을 한다.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주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의 한풀이, 부모님의 대리만족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은 수학에 한이 맺혀있다. '내가 학력고사에서 수학 문제 하나만 더 맞았다면 서울대를 갔을 것이다' 라는 확인할 수 없는 과거사를 언급하며 아이들을 수학에 내몰고 있다. 적어도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는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의 대부분은 수학이 공부순위 1위다.

수학에 매달려온 80% 이상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전후에 수포자가 된다. 최소한 포기는 안 하더라도 더 이상 해봤자 등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영어수학에 매달려 오다가, 고3이 되면 이제 남은 것은 논술뿐이다. 머리 속으로는 논술이 결코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분명 기가 막힌 공부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으로 논술 관련 정보에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한다. 그렇게 단기간에 속성으로 될 수 있다면 논술이 아니다.

우리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일도 많고 궁금한 일도 참 많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입시설명회나 방송에서 교육전문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자녀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고 입시정책도 명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학습방법도 확실하게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자녀들은 정말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자의 아들이 공자는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당 수 백 만원의 강연료를 받는 대학 선배의 자녀는 두 명 모두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모님 대상의 자녀교육학습법의 대가인 지인의 딸은 검정고시를 겨우 치르고 전문대를 다니다가 그 마저도 중퇴하고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필자가 감히 그런 분들의 대열에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대전에서 국어논술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냥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 고마울 뿐이다. 영어수학은 둘째 치고 국어공부도… 그냥 한글을 또박 또박 잘 읽고 있을 뿐이다. '그 일은 수포(水泡)로 돌아갔다'를, '그 일은 숲으로 들어갔다'고 받아 적으며 세상의 물거품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숲 속을 헤매고 있다. 어쩌랴? 공자의 아들이 공자는 아닌 것을.

논술을 공자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자. 공자는 공자일 뿐이고 공자의 아들과 딸이 공자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논술은 공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공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공자가 아닌 공자의 철학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술에서 필요한 것은 논술 자체가 아니라 바람직한 삶의 자세, 논리적인 학문탐구의 자세이다. 이런 맥락에서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기의 기법이 아니라, 철학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모든 논술시험의 핵심이 되는 사항이다. 철학은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구체적인 현실상황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논술의 특성상 철학 자체를 묻는 문제는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만,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형태가 가장 중심적인 형태로 출제가 되고 있다.

철학적 사고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사고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철학의 본질에서도 어긋나고 논술의 본질에서도 빗나갈 수 있지만, 대학입시의 특성상 철학적 사고를 신장하기 위한 의도적인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적 사고 능력 신장을 위한 학습을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경우 상식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위성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때 논술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에서 왜 논술능력을 요구하는가를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논술이 교육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선진국형 교육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논술자체가 학문의 가장 근본이 되는 '대상을 보는 안목과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논술능력은 바로 학습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철학적 사고력 신장을 위한 별도의 학습 없이 단순한 글쓰기 연습만 반복한다면 표정도 없고 색깔도 없는 '마네킹 논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철학적 사고력을 신장하려면 어떤 철학 책을 읽어야 하는가'와 같은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논술에서는 철학에서 다뤄지는 기계적인 어휘 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자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고, 이것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철학을 학습해야 한다는 점이다. 철학의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철학적 논의의 쟁점을 고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철학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학문이고 이것이 논술에서 필요한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철학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는 몇 가지의 쟁점 사항에 대해 학습하고 나름대로 체계화, 내면화하는 작업은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노력이 있을 때, 주어진 현상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논술학습이 되는 것이다. 철학자가 고민한 내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자가 고민해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논술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다. 논술은 국어 영어 수학 다음에 하는 또 다른 공부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문제의 해답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교과서를 체계적으로 읽고 생각하며, 좋은 문장을 찾아 옮겨 쓰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논술의 정도를 접하게 될 것이다.

공자가 되지 말자. 공자의 아들 딸로 유연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생각해보자. 논술 공부를 하지말자.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논술 쿵푸를 통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자. -끝-

둔산 일취월장 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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