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없고 입맛도 없고… 어르신, 그저 나이탓 아닙니다

“나이가 드니 여기저기 쑤시고 안 아픈데가 없고, 자식들 눈치만 보고 사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하고싶다는 의욕도 없어지고요. 소화도 안돼고, 자꾸 기억력이 떨어져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네요.”

동구 용전동 다가구주택에 홀로 사는 76세 한 모 할머니는 최근들어 입맛이 없어지고, 어지러움도 심하다. 벌써 두 달째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겠지….’ 라고만 생각한다. 두 살 위인 남편을 떠나보낸 지 3년 째인 한 모 할머니는 웃음을 잃어 버렸다. 재롱을 부리던 손자·손녀도 다 커서 이제는 찾아오지 않고, 셋이나 있는 자식들도 한 두달에 한 번씩 의무적인 전화만 할 뿐이다. 한 모 할머니는 “가끔 수다를 떨던 이웃집 친구들도 거의 세상을 떠나 대화할 상대로 없고, 관절염 때문에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요즘은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울하니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든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모 할머니 처럼 우울증을 겪고 있는 노인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최근 5년간(2004-2009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노인우울증 질환자가 2004년 8만9000명에서 2009년 14만8000명으로 최근 5년간 1.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10만명당 노인우울증 질환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인 우울증 환자 수를 연령에 따라 ‘전기노인(65-74세)’과 ‘후기노인(75세 이상)’으로 구분해보면 전기노인 질환자는 이 기간 6만4051명에서 9만7212명으로 1.5배로 늘었고, 후기노인은 2만4989명에서 5만509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남자는 80-84세가 가장 많고, 여자는 70-74세가 가장 많았다.

이에따라 노인우울증 진료비도 2004년 295억원(남자 89억·여자 206억원)에서 2009년 659억원(남자 186억원, 여자 473억원)으로 2.2배 증가했다.

75세 이상 후기노인의 경우 2004년 86억원에서 2009년 255억원으로 3배 증가하고, 남자보다 여자가 진료비를 3배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과 이병욱 교수는 “우울증은 노인들의 정신질환 중에서 가장 흔한 병이다. 우울증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많은데 이는 중년기 여성들이 폐경 전후에 겪게 되는 호르몬 변화는 물론 육아·가사 및 직장생활의 병행, 시부모님과의 갈등, 남성우위의 사회에서의 생활 등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전대 둔산한방병원 심신의학센터 교수 정인철 교수는 “우울증의 증상은 슬픔, 죄책감, 허무감, 무력감, 초조, 불안 등의 정서적 증상과 함께 식욕감퇴, 체중감소, 불면 등인데, 보통 노년기 우울증은 다른 우울증과는 달리 초조하고 불안해서 안절부절 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신체적 증상이 많고 자살위험성이 높으며 기억력 저하 등 인지기능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노인우울증은 왜걸리는 걸까? 유전적인 이유는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감소하기 때문. 이 밖에도 배우자 등 주변인과의 사별과 신체적인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등 등 환경적인 요인도 노인우울증을 심화시키는 큰 이유가 된다.

노년기 우울증은 단지 우울증으로 끝나지 않고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요망된다. 따라서 노인에게 우울증이 나타나면 치매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기억력저하 등 치매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 치료를 통해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노년기에 흔한 신경과적 질환으로 파킨슨병이 있는데, 파킨슨병 환자의 많은 수가 우울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파킨슨병에서도 우울증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노인 우울증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한림대 의대 김동현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77명으로 20년 전인 1990년 14.3명과 비교할 때 5.38배 급증했다. 이는 젊은층 자살률에 3배에 달하는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노인자살율이 최고에 이른다.

김효숙 기자 press1218@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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