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김경옥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필자는 1993년 대전성모병원 근무를 시작해 개원 54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30주년 장기근속상을 받았다.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의 뜻 깊은 해로 이 또한 감회가 남다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데 3번이나 변했을 시기에 맞이한 감격과 변화다.

대흥로 64번 길은 대전성모병원과 맞닿아 있던 성모여고 시절부터 한눈에 담겼던 풍경과 오르막길이 익숙하던 곳이다. 학교를 오르내리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나 보다. 지금은 병원 출퇴근 길에 여고 시절의 내 모습을 추억해 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다.

30년 근속에 대해 사람들이 묻는다. "한 직장을 그렇게 오래 다닌 비결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돌아보니 고단하기도, 아름찬 시간도 있었다. 생로병사가 공존하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응급실과 삶과 죽음의 정거장인 중환자실에서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보냈다. 지친 나를 일깨우고 오늘도 이 치열한 임상으로 이끄는 것은 나이팅게일의 '생명에 대한 헌신'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의식을 잃은 시민의 생명을 구한 간호사들의 미담이 언론에 빈번하게 소개될 만큼 안전의 최일선에서 그 역할과 기대가 커지고 있다.

간호의 看(볼 간) 자는 '보다', '바라보다', '관찰한다'는 뜻을 지녔다. 手(손 수) 자와 目(눈 목) 자가 결합해 눈 위에 손을 올려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우리 곁에는 매 순간 간호사의 관찰과 보살핌, 돌봄이 필요한 환자가 있다. 소홀히 넘겨지는 작은 사인, 변화가 환자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잘 훈련되고 탄탄하게 다져진 임상 경험은 큰 역할을 한다. 각자 맡은 몫을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하므로 우리는 늘 긴장하고 수시로 움직이며 환자 옆을 지켜야 한다. 또한 환자를 바라보는 눈은 정확하고 그 눈빛은 따뜻해야 한다.

현재는 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어두운 새벽녘 투석실 앞 의자에서 기다리는 많은 환자를 생각하듯 기상 시계 알람은 큰 소리로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 3회 반복되는 투석 치료는 자칫 환자를 지치게 하고 낙담시킨다. 병원은 희망의 화수분이다. 투석 간호에서도 환자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신뢰를 주고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간호사는 신체질환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필자가 환자 곁에서 배우고 익힌 것, 보고 들은 것, 느끼고 고민했던 것이 후배 간호사에게 좋은 길잡이가 됐으면 한다. 지금까지 30년간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좋은 나침반이 돼 준 나의 선배님이 계셨던 것처럼. 아울러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되고 마무리돼 간호사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돼 봉사와 기여로 인한 보람이 더 커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병원이라는 '사회적 둥지'를 통해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한다. 환자를 중심으로 너와 나 동료란 이름으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간호 현장에서 서로를 부축하고 위안이 된다는 것은 뿌듯하고도 소중한 일이다. 30여 년을 달려왔듯이 앞으로 주어진 시간도 환자 곁에서 돌봄을 실천하길 소망하며 대흥동 64번 길 겨울날은 점차 깊어져 간다. 김경옥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김경옥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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