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매장? 요즘은 화장이 대세, 91.9%나 차지

65세의 박창호씨는 올해도 추석을 앞두고 힘들게 벌초를 하고 왔다. 차량으로 고향을 왕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예초기로 풀을 베고 치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선친과 조부의 산소를 찾는데도 한참 헤맸다. 숲이 우거진 데다 산을 오르내리는 인적이 끊겨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전시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대전정수원은 화장문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대전시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대전정수원은 화장문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네 분의 묘를 개장하여 대전 공설묘지에 자연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형제들도 모두 찬성했어요. 내 자식도 첫째는 결혼을 않고, 둘째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내가 세상을 뜨면 누가 산골에 있는 조상 묘를 돌보고 벌초하겠습니까?"

◇전국에 1800만개 분묘, 1/3 무연고로 방치
명절 때 고향을 찾아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는 풍속이 희미해졌다. 이전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자손들이 직접 벌초를 했지만 요즘은 고향의 친척이나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벌초대행사에 돈을 지불하고 벌초를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먼 거리를 오가느라 시간과 경비를 소비하기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대행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후손이 묘지의 주소를 알려주거나 위성지도에 좌표를 찍어주면 벌초를 대행해준다. 올해 벌초 대행료는 1기당 10만원 정도이고, 묘지가 넓으면 비용이 추가된다.

대전추모공원의 수목장지. 소나무 아래 분골(유골)을 안치하고 땅 위에 표지석을 뒀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대전추모공원의 수목장지. 소나무 아래 분골(유골)을 안치하고 땅 위에 표지석을 뒀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벌초에 대한 당위성이나 의무감도 사라졌다. 한식이나 명절 때 산소를 찾아 벌초하고 성묘도 하는 것을 당연시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농경사회 때는 대개 후손들도 고향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외국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벌초나 성묘를 하는 게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묘를 잘 쓰고 관리하는 게 조상을 제대로 섬기는 일이고 그렇게 하면 복이 온다는 관념도 약해졌다. 전국적으로 1800만 기에 이르는 분묘 중 무연고 분묘가 600만-800만 기 정도로 추정된다. 줄잡아 1/3 정도가 풀과 나무가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추모공원의 화초장지. 꽃나무 아래 분골(유골)을 모시고 간단한 표지석을 설치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대전추모공원의 화초장지. 꽃나무 아래 분골(유골)을 모시고 간단한 표지석을 설치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장묘문화도 크게 변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게 화장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3년 1-6월 화장률이 전국적으로 91.9%나 됐다. 올해 사망한 17만2374명 중 15만8391명이 화장을 택했다. 부산의 화장률이 95.7%로 가장 높았고, 제주도가 82.8%로 가장 낮았다. 전반적으로 광역시가 모두 90%를 넘었고, 농어촌은 경기도와 경남을 제외한 도 지역은 80%대로 나타났다. 충청권은 대전이 93%, 세종 90.7%, 충남 84.4%, 충북 87.6%를 기록했다.

◇ 화장률 91년 17.8%, 요즘은 대부분 화장후 자연장
우리나라의 화장률은 극적으로 급증했다. 1991년 17.8%에서 2001년 38.3%, 2011년 71.1%, 2021년 90.5%, 올해는 91.9%에 이르렀다. 불과 30여년 만에 '매장'에서 '화장'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변했고, 그게 바로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나 종교적 이유로 화장을 기피했으나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토지 수요가 커졌고 이러한 개발 과정에서 매장문화가 엄청난 걸림돌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인구 대비 국토 면적이 좁은 편인데 그나마 쓸 만한 땅마다 묘지가 조성돼 토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동안 정부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등 장묘문화를 개선하는데 힘을 쏟았다. 1961년에 제정한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을 수차례 개정했고, 2000년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을 제정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묘지로 인한 국토 훼손을 막기 위해 화장·봉안 및 자연장을 장려하고 위법분묘 방지 시책을 마련, 시행하도록 했다.

세종은하수공원 자연장지(잔디장지). 잘 장리된 잔디밭에 분골(유골)을 묻고 생몰 날짜를 새긴, 간단한 표석만 설치했다, 시진=김재근 선임기자
세종은하수공원 자연장지(잔디장지). 잘 장리된 잔디밭에 분골(유골)을 묻고 생몰 날짜를 새긴, 간단한 표석만 설치했다, 시진=김재근 선임기자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전국적으로 화장시설이 62개, 자연장지 192곳, 봉안시설 616개, 공원묘지가 529개나 생겨났다. 충청권 4개 시·도에도 화장시설 8개, 자연장지 24곳, 봉안시설 103개, 공원묘지 40개가 설치됐다. 이들 공설 및 사설 장사시설이 장묘 방식을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하수공원원 산림형 수목장지. 나무에 고인의 이름과 생몰 일자를 기록한, 간단한 표찰이 붙어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세종은하수공원원 산림형 수목장지. 나무에 고인의 이름과 생몰 일자를 기록한, 간단한 표찰이 붙어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화장 이후 골분(유골)을 산이나 밭에 봉분을 만들어 모시는 사례도 크게 줄었다. 대부분 봉안시설(봉안당, 봉안묘 등)이나 자연장지(수목, 화초, 잔디장)에 안치하고 있다.

세종은하수공원 봉안당. 내부에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공간이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세종은하수공원 봉안당. 내부에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공간이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 장사시설인 세종 은하수공원의 경우 봉안당에 1만3117위, 잔디장지에 1만1028위, 수목장지에 587위가 안치돼 있다. 이전에는 봉안당에 안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근래 들어 잔디장으로 모시는 사례가 크게 증가했다. 봉안당은 최초 이용 기간이 15년(1회 연장시 총 30년간 이용)이지만 잔디장은 최초 이용 기간이 30년이다. 특히 이곳 잔디장지는 확 트인 공간에 주변 경관도 아름다워 유족들이 고인을 추모를 하고 조촐하게 모임도 갖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 요즘은 교통 편리하고 경관 좋은 곳이 명당
유족들이 자연장을 선호하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봉안시설과 자연장지가 있는 경우 대부분 자연장을 택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산속의 이른 바 '명당'에 봉분을 설치하고 한식과 명절 때 성묘를 했지만, 요즘은 교통이 편리하고 경관이 좋은 곳에 자연장으로 모시고 시간이 될 때 편리하게 찾아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넓게 산림을 훼손하여 봉분을 설치하고 비석과 상석 등 석물을 설치하는 것도 거의 사라졌다. 과시적이고 호화스럽게 묘를 쓰기보다는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 간소하고 친환경적으로 골분(유골)을 안치하는 장묘문화가 정착된 것이다.

장묘문화가 크게 개선됐지만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장묘시설의 확충 문제다. 전국적으로 장사시설이 부족해 타 지역으로 가서 화장을 하고 장사를 치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화장장과 봉안시설, 공원묘지를 신규 설치하거나 증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풀기 위해 충북의 음성, 진천, 괴산군이 공동으로 화장시설을 짓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3개 시·군이 후보지를 함께 공모하고 400억-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화장시설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양주시와 의정부, 남양주, 구리, 동두천시 등도 공동 종합장사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매우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2060년에는 사망자가 연간 7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이기주의와 님비현상을 극복하고 선제적으로 화장 및 장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무연분묘를 좀더 적극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장사법에 자치단체장이 분묘를 일제조사하여 무연분묘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부분이 소극적이다. 단체장이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의무적으로 처리하도록 법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초고령화시대 화장 봉안시설 확충 등 과제
타인에 토지에 위치한 묘지의 분묘기지권도 세태 흐름에 맞게 강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2001년 1월 13일에 시행된 개정 장사법은 이법의 시행 이후에 설치된 묘지에 대해 분묘기지권의 최장 존속기간을 60년으로 해놓았는데 이것을 공설묘지와 사설묘지처럼 30년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완고했던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가 화장과 자연장으로 변모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환경훼손을 줄이고 허례허식을 없애는 한편 좁은 국토를 넓게 쓰자는 인식의 변화와 국민적 실천이 장묘문화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묘지를 조성한 뒤 50년 이후에도 관리, 유지될 확율은 25%에 불과하다고 한다. 21세기 도시화, 세계화, 개인화가 더욱 진전되고, 출산율이 떨어져 핵가족화도 심해질 것이다. 장례와 장묘문화 역시 더 많은 변화의 바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장묘가 조상을 기리는 소중한 전통을 계승하되 후손들까지 거부감 없이 이런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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